많은 정보 입력될수록 뇌는 과거 정보 열심히 지워

분명히 알던 내용인데 생각이 안 나는 경험은 누구나 하게 된다. 특히 이런 경험은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난 뒤 일어나기 쉽다.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기억하려 밤샘 공부를 했지만 막상 첫 문제를 대하고 나니 머리 속이 하얗게 빈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경험이다.

또한 매일 많은 양의 정보를 뇌 속에 집어넣는 사람은 과거사를 까맣게 잊어 버리는 현상도 관찰된다.

과학자들은 그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즉 뇌가 일부러 과거 기억한 내용을 지우려 드는 듯한 현상의 원인은 캐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국제적 학술지 ‘셀(Cell)' 최신호에 그 비밀의 일부를 밝힌 연구 성과가 공개됐다.


상황 바뀌었는데 옛날 기억에 의존한다면…

중국 칭화대학의 리이 중 교수 팀은 초파리를 대상으로 기억 실험을 시키면서 기억이 입력되고 지워지는 과정이 일어나는 과정에 랙(Rac)이라는 단백질이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초파리들에게 3가지 기억 실험을 했다. 첫 실험은 특정 냄새를 맡은 뒤 다리에 전기충격을 줘 특정 냄새에 대한 공포 기억을 심어 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실험은 ‘기억에 대한 방해’ 실험으로, 다른 냄새를 맡게 한 뒤 충격을 주어 첫 번째 실험의 결과를 헷갈리게 했다.

세 번째 실험은 ‘기억의 역전’ 실험이었다. 처음 배운 내용을 뒤집어버리는 내용이다. 즉, 예컨대 첫 실험에서 사과 냄새와 전기 충격이 연결되고, 오렌지 냄새는 충격과 상관없었다면, 마지막 실험에서는 오렌지 냄새를 맡은 뒤에 전기 충격을 주어 초파리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달라진 환경을 얼마나 빨리 기억하느냐를 본 것이었다.

이런 실험을 하면서 연구진은 일부 파리에게는 랙 단백질이 충분히 생성되도록 했고, 일부 파리에서는 랙 단백질 양을 크게 낮췄다. 그러자 뚜렷한 차이가 발생했다.

랙 단백질이 충분한 파리는 과거 기억을 신속히 잊고 새 기억에 적응했다. 예컨대 전에는 오렌지 냄새가 ‘평화의 냄새’였지만 지금은 ‘공포의 냄새’로 뒤바꾼 사실을 더 빨리 알아채고 이에 대처하는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랙 단백질이 과거 기억 지우는 데 적극 관여


그러나 랙 단백질이 거의 없는 파리들은 이런 ‘기억의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들은 첫 기억을 지우는 능력이 떨어져 오렌지 냄새를 맡은 뒤 전기충격이 주어지는데도 오렌지 냄새가 날 때 회피 행동을 하지 않는 등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파리뿐 아니라 쥐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관찰했다”며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를 빨리 기억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을 때 과거의 기억 내용을 빨리 잊고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잊는 과정은 할 수 없이 또는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뇌가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하는 작용이란 점이 증명된 것이다.

뇌의 이런 작용 때문에 벼락공부처럼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뇌에 입력시키려 하면 뇌는 랙 단백질의 작용으로 먼저 배운 내용을 열심히 지우면서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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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으로 사람 얼굴 잘 기억 못하는 사람 따로 있어

일반적인 지능지수와는 별개 기능이라는 사실 드러나 



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처음 만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증세가 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가 나쁘고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구 결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다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은 일반적인 지능과 상관없으며, ‘사람 얼굴을 기억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사범대학의 지아 리우 교수는 중국의 7~19세 일란성 쌍둥이 102쌍과 이란성 쌍둥이 71쌍을 대상으로 사람 얼굴 기억능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들은 형제끼리 비슷한 실력을 보였다.

반면 유전적으로 50%만 같은 이란성 쌍둥이들은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많았다.

영어 잘 한다고 반드시 수학 잘 하는 것 아냐

리우 교수 팀과는 별도로 비슷한 연구를 미국에서 진행한 MIT대학의 낸시 캔위셔 교수 팀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리우 교수는 MIT에서 연구를 마치고 베이징사범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교수 팀이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과 일반적 지능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 비례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얼굴을 잘 기억한다고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며, 반대로 얼굴을 잘 잊어 버린다고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IQ(지능지수) 검사는 한 가지 두뇌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두뇌 능력이 뛰어날 것으로 가정한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 언어나 역사 등 다른 공부에서도 뛰어날 것으로 가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두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이런 통념에 도전한다.

뇌 기능은 스위스 아미 나이프 같다는 '모듈론' 뒷받침

이들의 연구 결과는 뇌 능력에 대한 이른바 ‘모듈론’을 뒷받침한다. 모듈론은 뇌는 여러 문제에 대해 다양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는 마치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각기 다른 용도에 맞는 도구를 여러 개 지니고 있는 것처럼, 뇌의 능력은 모듈화돼 있으며, 유전자가 이러한 모듈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모듈론을 지지하는 증거로는, 전체적 지능은 떨어지는데도 말은 어려운 단어를 써 가며 청산유수로 잘하는 윌리엄스 증후군, 그리고 지능은 정상인데도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난독증 등이 있다.

앞으로 두 교수는 영어를 잘해도 수학은 잘 못하는 것처럼 사람마다 과목별로 학습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도 유전자에 의한 것인지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우 교수의 연구 결과는 ‘진화 생물학(Current Biology)’ 1월7일자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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