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유전자 분석했더니

고양이 사이즈의 '인도 사슴'이 고래의 선조


초식동물인 상태로 물로 되돌아가

'걸어다닐 수 있는 고래' 때부터 육식으로 바뀌어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입니다
. 또한 고래는 바다에서 시작한 생명이 뭍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 동물이어서 신비롭게 느껴지죠.  

 

그런데 고래의 선조에 대해서는 그간 초식동물이었냐, 아니면 육식동물이었냐 하는 점이 논란이었답니다.

 

고래나 돌고래 같은 고래류 동물들이 현재 육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물로 되돌아가기 전에 뭍에서 벌써 육식을 했으리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물로 돌아간 뒤에야 육식으로 전환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죠.

 

앞의 학설은 고래의 조상을 메소니키드(mesonychid)라는 육식동물로 추정하죠. 메소니키드는 마치 늑대와 호랑이를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왼쪽 그림. wikipedia.org에서 인용)

 

반면 뒤 학설은 인도에서 발견된 고양이만한 크기의 초식동물 인도휴스(indohyus)로 추정하죠.

 

현재 고래의 크기와 식성을 생각하면 늑대나 큰 곰만큼 컸던 육식동물에서 진화했다고 믿는 게 더 그럴듯해 보이죠.

 

그러나 미국의 과학잡지 플로스 원(PLoS One)’ 이번 주 호에 나온 논문에 따르면 모양, 유전자 등을 다각도로 조사한 결과, 고래의 조상은 고양이만한 사슴이었던 인도휴스일 가능성이 훨씬 크답니다. 메소니키드는 먼 친척뻘 된다는 것이지요.

 

이 논문을 발표한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연구진은 그 동안 발견된 고래 관련 화석 80가지를

 

몸 생김새(털이 있나 없나, 발목 뼈의 생김새)

행동의 특징 같은

601가지 특징으로 분류해 컴퓨터에서 분석했답니다.

 

여기다가 최근 발견된 49가지 유전자 특징까지 넣어 컴퓨터에 입력함으로써 고래와 가장 닮은 동물이 무엇인지 분석했다는 것이지요.

 

그 결과, 현재 살아 있는 동물 중에서 고래와 가장 비슷한 사촌 격은 하마인 것으로 드러났답니다.

 


그리고 과거 살았던 멸종 동물의 화석 중에서는 고양이만한 사슴인 인도휴스(위 그림. wikipedia.org에서 인용)가 고래의 조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나왔다는 것이죠.

 

사실 인도휴스는 물 속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어 30년 전 인도 카쉬미르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뒤 고래의 조상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온 동물입니다.

 

인도휴스는 초식동물의 이빨을 갖고 있어 뭍에서 초식을 했을 게 분명한데, 귀 뼈는 고래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을 갖고 있어 아주 흥미로운 동물이죠. 그래서 학자들은 이 인도휴스가 뭍과 물을 오가며 생활한 포유류로 봐 왔습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도휴스가 물과 뭍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드디어 바다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인도휴스는 초식동물이었다.

 

물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물 속 생물을 잡아 먹는 육식성을 발달시켰지만, 그때까지도 고래의 조상은 여전히 물과 뭍을 오갈 수 있는 다리를 갖고 있었다.

 

땅을 걸을 수 있으면서도 물 속에 들어가 살면서 물 속 동물을 잡아먹는고래의 선조격 동물로는 암불로세투스(Ambulocetus, 아래 그림, eurekalert.org에서 인용)를 들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천만 년 전쯤 살았던 암불로세투스는 진정한 다리 달린 고래라고 할 만한 몸 생김새를 갖고 있다.



진화에 관한 연구는 항상 재미있지만, 땅 위에서 살던 고양이 만한 사슴과 동물이 고래로 발전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리고 다리 달린 고래라는 암불로세투스의 모습도 참으로 기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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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을 괴롭힌 문제가 몇 가지 있었죠. 그 중 하나가 눈입니다. 진화를 통해 생겨났다고 하기엔 너무 정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창조론, 지적 설계론 따위를 주장하는 눈 먼
사람들은 눈처럼 복잡한 기관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못 만들었을 게 분명하다는 뜬금없는 주장을 아직도 하고 있죠.

눈의 진화에 대해서는 많은 게 밝혀져 있지만 국립호주대학 의대의 트레버 램(Trever Lamb) 교수가 가장 오래된 과학 학술지라는 영국의 철학 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 최신호에 눈의 진화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5억년 전 눈 생기기 시작해 1억5천년 전 완성

그는 논문에서 눈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빛 감지 세포생긴 것은 5억 년 전이며, 현재의 인간 같은 눈이 완성된 것은 1억5천만 년 전"이라며 "3억 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진화를 거쳐 사람 눈 같은 정밀 구조가 완성됐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지구상 동물의 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사람 눈처럼 렌즈를 갖고 있는 카메라식 눈이며, 다른 하나는 파리 눈처럼 수많은 낱눈이 모여 만들어지는 겹눈(compound eye)입니다.

사람과 같은 눈이 생기게 된 계기를 램 교수는 "5억년 전쯤 겹눈을 가진 포식자를 피해 민달팽이 같은 동물이 깊은 물 속으로 숨으면서 처음으로 렌즈식 눈이 생겼고 설명합니다. 파리 같은 눈을 가진 괴물을 피해 물 속 깊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겹눈 괴물' 피하다 생겨난 사람 같은 렌즈식 눈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인 로돕신(rhodopsin, 視紅素)에는 c-opsin과 r-opsin이 있는데 c-opsin은 렌즈식 눈에, 그리고 r-opsin은 겹눈에 주로 쓰인다고 합니다.

겹눈의 r-opsin은 어두운 환경에 맞도록 재조정되려면 빛이 비춰 줘야 하지만, 렌즈식 눈의 c-opsin은 빛이 없어도 화학적으로 주변 밝기에 맞도록 재조정이 가능하답니다.

겹눈을 가진 괴물을 피해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간 우리의 선조 동물들은 c-opsin을 이용하는 렌즈식 눈을 진화시켰기 때문에 겹눈 괴물들을 피해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램 교수는  “어두운 물 속에서는 렌즈식 눈이 겹눈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 렌즈식 눈이 계속 진화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겹눈 괴물'을 피해 깊은 물로 도망간 주인공은 먹장어 같은 동물로 추정합니다. 먹장어는 깊고 어두운 바다에 살며 눈이 없빛을 느끼는 머리에  두 개 습니다.


5살짜리 칠성장어의 깜짝변신에서 진화 엿볼 수 있어

빛 감지 띠로 밤인지 낮인지, 계절은 뭔지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눈이라고 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먹장어는 이런 빛 정보를 토대로 짝짓기 등을 한답니다.

먹장어비슷하면서도 다른 칠성장어란 물고기가 있습니다. 칠성장어는 태어나서 다섯 살 때까지는 먹장어처럼 빛 감지 띠’밖에 없지만 다섯 살이 되면 홀연히 진짜 눈이 생겨납니다. 그야말로 장님이 눈을 뜨듯 번쩍 눈이 생기는 것이지요. 

램 교수는 칠성장어의 이런 변화가 진화의 순간을 재현하는 것으로 봅니다.


"창조론-지적설계론, 눈 갖고 장난 그만 좀 쳐라"

처음엔 그저 빛을 감지하는 띠 정도에서 렌즈, 각막, 렌즈 조정 근육, 시신경 등을 갖춘 완전한 눈으로 진화하는 데 3억년이 걸려 지금으로부터 1억5천만 년 전쯤에는 렌즈식 눈이 일단 완성됐으며, 워낙 잘 진화된 눈이기 때문에 지난 1억5천만 동안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은 썩어 없어지므로 화석으로 남을 수 없죠. 뼈 같이 화석이 남는 부위는 진화의 증거가 있지만 눈처럼 화석이 남지 않는 부위는 항상 논란이 있기 쉽습니다. 창조론자들이 눈을 예로 들어가며 신이 만들어냈다는 이론도 아닌 그저 주장을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램 교수의 연구처럼 유전학, 분자생물학 등을 이용한 연구은 눈의 진화사를 척척 밝혀내고 있습니다.

램 교수는 사람 눈이 3억 년에 걸쳐 진화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이제 더 이상 창조론자들이 눈을 갖고 장난을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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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임수에 아기
-개 잘 속지만, 
늑대는 절대 안 속아

아기가 잘 속는 건 어른을 완전히 믿고 따르기 때문 

 

아기, , 늑대를 가지고 한 실험에서 늑대가 독자적 판단 능력이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기와 개는 사람의 지시를 열심히 따르기 때문에 실험자가 속이면 영락없이 당하지만 늑대는 처음서부터 사람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맞췄기 때문이다.

 

헝가리 외트뵈스 대학의 아담 미클로시 교수 팀은 아기, , 집에서 기른 늑대를 갖고 실험한 결과를 저명한 과학지 사이언스’ 94일자에 실었다.

 

실험 방법은 상자 두 개를 마련하고 그 안에 먹을 것, 장난감 등을 넣어 놓고 아기, , 늑대 더러 찾으라고 한 것이다.

 

실험자는 처음엔 연거푸 A 박스에 물건을 넣고 아기, , 늑대에게 A 박스를 손짓하며 물건을 찾으라고 했다. 지시대로 쫓으면 되니 문제가 없었다.


속였을 때 늑대는 사람 무시... 아기-개는 실험자 뜻 따라

 

그러나 조금 있다가 실험진은 방법을 바꿨다. B박스에 물건을 넣고 A박사를 손짓하니 아기와 개는 열심히 A박스를 계속 헛되이 뒤졌지만 늑대는 안 그랬다.

 

늑대는 눈으로 보이는 증거를 토대로 A가 아닌 B 박스에 물건이 있다는 독자적 판단을 하면, 사람이 아무리 A박스를 손짓하건 말건 바로 B박스로 직행했다.

 

비록 사람에게 잡혀 사람이 기르고 있는 늑대였지만 야생에서 독자적 판단을 하며 살았던 기질 그대로를 물려받아 사람의 속임수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기까지의 실험에서 연구진은 1차 결론을 얻었다. 아기와 개는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설사 지시하는 사람에 문제가 있어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었다. 반면 늑대는 사람의 지시를 따르는 동물이 아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험자를 바꾸면 개는 안면몰수... 아기는 계속 실험자 뜻 따라  

 

연구진은 이어 실험에 약간의 변형을 준다. 실험하는 사람을 바꾼 것이었다.

 

ㄱ이라는 사람이 실험을 주재하다가 ㄴ이라는 사람으로 주재자가 바뀌자 아기, , 늑대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늑대는 처음부터 사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자가 바뀌건 말건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개는 실험 주재자가 바뀌자 새로운 사람이 계속 A 박스를 손짓해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늑대처럼 자신의 판단을 따르기 시작했다.

 

앞 전 실험자는 주로 물건을 A 박스에 넣고 A 박스를 손짓했지만, 사람이 바뀐 이상 똑 같은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독자적 판단에 따르겠다는 듯한 자세였다.

 

반면 사람의 아기는 우직했다. 실험자가 바뀌건 말건 A 박스에 물건이 있다고 손짓하면 설사 B 박스에 물건이 있다는 시각적 정보가 일부 존재하더라도 계속 A 박스만 뒤졌다. 계속 허탕을 치면서도.

 

개는 한 사람에게 배우고, 아기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운다
 

이런 행동의 결과를 연구진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개에게는 사람과의 11 관계만 중요할 뿐, 어른(개에게 사람은 어른) 전체로부터 배울 필요는 없다. 즉 배우는 정보를 일반화해 모든 상황에 맞는 정보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아기는 어른 전체로부터 배운다. 연구진은 아기는 어른과의 11 관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른 전체로부터 여러 지식을 배워 그것으로 넓은 세계를 인식하는 일반적 정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을 무조건 믿고 따르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른이 맘만 먹으면 아기들 얼마든지 속일 수 있어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르는 게 인간의 아기이기 때문에 어른은 아기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 늑대와 비교하면 늑대는 처음부터 사람의 교육이란 게 먹히기 힘들고, 개는 한 사람에게는 속아도 모든 사람에게 속지는 않지만, 아기는 어른 일반에게 끊임없이 속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른을 믿게 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관점이 하나 나온다. 얘들을 가르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들을 망치려면 엉터리 가짜 교육을 시키면 된다. 그대로 믿고 따라오니까.

 
한국 어른들은 한국 아기들 교육 제대로 시키고 있나?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 종교인들은 우리에게 어린애를 다오라고 항상 외친다. 어린이 성경학교 등등이다. 그러면서 종교인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어린이를 주면 뼛속까지 철저한 종교인을 만들어내겠다.

 

여기서 문제 하나. 한국의 집단적 어른들은 자라나는 새싹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가? 친구-세상과 돕고 살도록 가르치는가, 아니면 무찌를 적으로 여기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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