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사상 최대 폭설인데 저쪽엔 '이웃 훈정'이, 우리에겐 원망만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기상 관측 사상 최고의 눈이 내려 연방정부가 휴무에 들어갔단다. 관측 사상 최고의 눈을 한국의 수도 서울은 지난 1월4일에 맞았으니 한달 간격을 두고 두 나라의 수도가 각각 사상 최고의 눈을 경험한 셈이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 저쪽에선 사상 최대의 폭설을 맞아 전선이 끊어지고 정전 사태를 겪으면서도 사람들이 ‘즐거운 체험’을 하고 있다니,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스노샬리즘’이란다. 스노우(눈)+소샬리즘(사회주의)를 합친 말이다.

미국 수도에서 사회주의라니!, 국내 극우파가 들으면 식겁할 일이지만, 여기서 사회주의란 눈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몰려가 도와 주면서 ‘사회주의적’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조선일보의 워싱턴 특파원도 차가 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고생하니 이웃들이 도와 줘 곤경을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옆집-앞집 남자의 이름을 거론하며, ‘즐거운 폭설 경험’을 지면으로 전했다.

우리는 25.4cm, 저쪽은 97.3cm인데…

사상 최고의 폭설을 맞아 태평양 건너 저편에서는 ‘훈훈한 이웃 정’을 경험했다는데, 우리는 어땠나? 1월4일 우리가 맞은 사상 최대 폭설의 높이는 25.4㎝였다. 워싱턴의 사상 최대는 97.3㎝였다. 단순히 산수 계산만 해도 저쪽이 우리의 4배 폭설이다.

1월4일 그 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악다구니’를 경험했다. 안양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회사에 도착하는 데만 4~5시간이 걸렸다고 했고, 폭설로 길이 꽉 막히자 차를 길 한복판에 버리고 직장으로 걸어간 사람도 있었다.

다섯 시간 걸려 출근하고, 세 시간 걸려 퇴근하는 지옥 같은 경험을 했고, 꽉 막힌 도로에 그래도 진입하려는 차량들이 엉키면서 서로 빵빵 거리고, 욕지거리를 했다.

한 시간씩 기다려야 올까말까 하는 버스에 마치 짐짝처럼 빼곡이 채워져 출근하는 사람들은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저, 지금 가는 중인데요, 버스가 전혀 나가질 않아요.”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가긴 갈께요.”

4배의 폭설이 내렸는데, 서울은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워싱턴은 왜 서로 돕는 훈훈한 이웃정이 펼쳐지는, 천국과 지옥처럼 다른 그림이 떠올랐을까?

재난 대비 시스템 만들고, '사람이 먼저' 새기면 돼

이유는 하나다. 사회 시스템이다. 우선 학교 문제. 워싱턴 인근 학교들은 폭설주의보 등 자연재해 일기예보가 나오면 아침 6시쯤 교육청 홈페이지와 TV, 라디오 등을 통해 그날의 학사 일정을 밝히게 돼 있다.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전화하는 소동을 벌일 필요가 없다. TV를 켜거나 인터넷을 켜면 바로 오늘 학교가 쉬는지, 낮 12시까지 가면 되는지 등이 확인된다. 그래서 소동은 없다.

두 번째 직장. ‘사상 최대’ 정도의 자연재해가 있으면 직장에 안 나가는 게, 못 나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전화 한 통화로 아침 상황이 간단히 정리된다.

워싱턴의 경우도 시내에는 주거지가 많지 않은 행정도시이기 때문에 연방 정부의 공무원들이나, 워싱턴 시내의 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주거지는 대개 포토맥 강 건너 버지니아 주나, 또는 북서쪽 외곽인 메릴랜드 주에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통체증도 출퇴근 시간에는 상당하다.

4~5시간씩 걸려 출근을 해 ‘충성의 눈도장’을 찍지 않아도 되는 직장 시스템이 이뤄져 있으니, 전화 한 통화로 출근 문제를 끝내고 집앞으로 나가 쌓인 눈을 치우면서 오랜만에 이웃집 남자와 인사말도 주고받고, 또 지나가던 차가 눈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너나없이 달려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즐거움을 맞보면서 ‘기분좋은 호르몬’이 펑펑 솟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어도 출근' 이제 그만 할 때 안 됐나?

반면, 한국의 직장 시스템-분위기는 ‘틈만 나면 자른다’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사장들은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쌔고 쌨다”는 말을 툭 하면 내뱉는다. 당장 자를 것도 아니면서, 이런 ‘사기 저하에 직방인’ 말들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니 아무리 천재지변이 닥쳐도, “사장님, 저는 5시간이 걸려서 출근했습니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출근했습니다”라는 충성의 서약을 몸으로 보여 줘야 하는 게 한국의 시스템이다. 학교 일정에 대한 통보 시스템도 없으니 학생들은 발목이 눈에 얼건 말건 등교해야 한다.

안다. ‘하고야 마는’ 한국인의 이러한 특징이 서구에서 수백년이 걸린 근대화, 자본주의화 과정을 단 수십년이라는 초고속 속성반으로 통과하게 만든 원동력이며, 현재의 세계 경제위기에서 한국이 가장 먼저 빠져나오게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을.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도 이제 ‘고기 먹고 살만큼’이 됐는데, 왜 5시간 걸려 출근하고, 세 시간 걸려 퇴근하는 멍청한 짓을 해야 하는지를. 꼭 그렇게 해야만 회사가 잘 되는지를.

'눈도장 충성' 탓에 생기는 모든 손실을 좀 생각하자

1월4일처럼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폭설이 내리면 출근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몇 시간 늦게 출발하거나, 아니면 하루를 온전하게 쉬는 게 본인은 물론, 회사에게도, 서울시에게도, 대한민국에게도 더 이익이다.

‘눈도장 충성’을 위해 출근하면서 길에서 낭비하는 자동차 기름, 눈길에 운전하다 사고가 나 치러야 하는 수리비, 멈춰선 전철-버스에 퍼부어야 하는 저주, 이에 따라 머리에 또 한번 박히는 ‘이 나라는 안 돼’라는 새삼스런 깨달음, 이 모두가 우리에게 마이너스다.

이런 낭비를 없애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기준을 정하면 된다. 기준을 정하기 가장 쉬운 대상은 학교다. 영하 몇 도 이하 온도에, 눈이 몇 센티 이상 오면 학교를 쉰다고 원칙을 정하고, 이 기준에 맞춰 가령 '낮 시간이 기온이 오를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면 오전 10시, 12시에 수업 시작 등으로 신축적으로 운영하면 된다. 민간기업 등은 이 원칙에 준거해 직원들의 출근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아무리 폭설이 쏟아져도,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직장에 출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물론 있다. 폭설을 치워야 할 담당 공무원마저 '눈이 왔으니까 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럼 사람들은 최악의 조건 아래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도록 해야 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 줘야 한다.  

그러나 지난 1월4일처럼 최악의 조건에서 모든 국민이 목숨을 걸고 출근할 필요는 없다. ‘열심히 뛰자’도 좋지만, 이제 우리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감'으로 일해서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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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파고 불 심는 '겉멋 번지르르' 삽질, 언제까지 하려나

‘세계의 디자인 수도’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서울을 가꾸는 사업이 도시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청계천을 가보나, 최근 실개천 디자인 혁신을 마쳤다는 대학로를 가보나, ‘디자인 서울’의 알맹이는 ‘토건 디자인’인 것 같다.

보도의 일부분을 잘라내 실개천을 만드는 사업이 대학로 사업을 필두로 서울 전역에서 실시된다고 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역시 땅을 파 등불을 집어넣어 형형색색의 광선을 위로 뿜어내는 스타일이 많은 것 같다.


CNB뉴스와 자매지 주간 CNB저널은 지난해 11월10일과 12월4일 두 차례에 걸쳐 대학로 보도에 설치된 실개천에 보행인의 발이 빠지면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에 따라 서울시와 관할 종로구청은 12월 중에 문제의 실개천 구간을 유리 덮개로 덮는 보수 공사를 한 바 있다.

작년 11월 대학로 도보를 파고 실개천을 조성한 모습(왼쪽)과 보행자 부상이 잇달자 한 달 만에 뚜껑을 덮은 모습. 총공사비 36억원이 들었다니 적어도 몇 억짜리는 되는 '덮개'다.

이런 실개천 사업이 이번에는 남산 순환 산책로에서 진행 중이다. 산책로 도보의 일부분을 잘라내 실개천으로 꾸미면서 보도가 좁아지자 남산에서 마라톤 연습을 해온 시각장애인들이 “우리는 어쩌라고” 걱정하고 있으며, “봄 벚꽃놀이 때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어깨를 부딪치며 다니는 길인데 보도를 좁히면 어쩌냐”는 걱정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중앙일보 1월12일자가 지적했다.

디자인도 좋고, 실개천도 좋다. 문제는 과연 서울이 그런 디자인이 필요한 곳이냐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어디를 가나 ‘미어터지는 게’ 기본이다. 서울로 향한 일극집중화 때문이다. 사람들이 계속 지방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오기 때문에 서울 중에서도 강남권과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권은 더 이상 인구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포화 상태를 이루고 있다.


'전깃불 휘황찬란'은 상업지구 특징인데, 왜 서울 전체를 상업지구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살면 상업지구가 당연히 발달하게 돼 있고, 상업지구의 특징은 ‘휘황찬란’ 한 마디로 요약된다. 밤새 명멸하는 불빛이 시가지를 점령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유서 깊은 관광도시에서 ‘휘황찬란’한 곳은 대부분 상업 지구다.

현재 서울시가 하는 디자인 작업을 보면 서울의 거의 전역을 형형색색 전기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미 넘치는 상업지구로 어지러울 지경인데 왜 더 불빛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또 어쩌다 한 두 곳이면 모를까 도처에서 왜 땅바닥에서 불빛이 위로 뿜어져 나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물어보자. 처음부터 황무지에 철저한 계획도시로 만들어졌고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오는 미국의 수도이자 ‘디자인 도시’인 워싱턴 DC의 그 어디가 그렇게 휘황찬란한가? 워싱턴의 그 어느 곳도 땅바닥에서 전깃불빛이 뿜어져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그 찬란한 건축미로, 그리고 미국 역사를 장식하는 스토리로 전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당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로 정해진 지 600년이 넘은 도시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과밀-과도 개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스토리’가 있다. 서울이 끌리는 도시가 되려면 우선 과밀화 해소로 도시가 숨을 쉬게 만들면서 서울의 스토리-이야기로 세계인을 당겨야 할 텐데 웬 삽질 일색인지 모르겠다.


'역사가 휘황찬란한' 서울 만드면 안 되나?

우리가 유럽에, 미국 워싱턴-뉴욕에 관광하러 갈 때 과연 네온사인 빛을 보러 가는가? 이들 도시들은 모두 불빛이 아니라 ‘역사가 휘황찬란한’ 도시들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대단한 쇼핑 지구가 있지만 세계인을 끌어당기는 것은 눈물 나도록 고색창연한 밀라노 대성당이지, 그 옆에 빌붙어 있는 백화점이 아니지 않은가.

한때 홍콩이 휘황찬란한 쇼핑의 도시로 손님을 끌었지만 세계 무역이 자유화된 지금도 그런가? 서울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디자인 서울’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러나 삽질 디자인 도시는 제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뭔가 겉으로 만들어내는 행정은 다음 선거에 유리할지는 모르겠다. 또 삽질을 하는 과정에서 돈이 풀리니 업자들도 좋아할 것 같다.

이렇게 서울의 피부를 마구 긁어 뜯기 전에, 전 지역에 ‘땅바닥에서 기어올라오는 전깃불’을 설치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나 봤는지 모르겠다. 아, 숨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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