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구진 변형 최후통첩 게임으로

부당한 분배 못 참는 인간심리 보여 줘

 

우리도 실험 좀 합시다.

 

외국 학술지를 보면 참 별 실험들을 다 한다. 이런 실험과 결과들을 보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내놓고 실험을 하는 도전정신이 부럽고, 또 그런 실험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여러 사람에게 알린다는 점도 부럽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사람들이 알아야 세상이 좋아질 텐데 한국의 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이런 실험들을 안 하니 도대체 뭣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 그리고 부당한 처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으로 최후 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게 있다. , 을 두 사람이 있을 때 갑에게 당신 마음대로 나눠라며 예컨대 10만 원을 주는 게임이다.

갑은 자기가 가져갈 액수를 정하고 나머지를 을에게 최후통첩한다. 이 액수를 을이 받아들이면 둘이 돈을 나눠 갖고, 을이 거부하면 아무도 돈을 못 가져간다.

 


갑이 지멋대로 돈 나눴을 때 을의 반응은
?

 

대개 사람은 양심이 있어서 5050에 근접하는 비율로 돈이 나눠지지만 못된 사람은 어디나 있게 마련이라 8만 원을 자기가 갖고 상대방에겐 2만원만 주겠다는 고약한 사람이 나타나게 돼 있다.

 

당신이라면 이럴 때 그 2만 원을 순순히 받을 것인가? 아니면 옛다, 이 나쁜 자식아라면서 2만 원을 갑의 면상에 집어 던질 것인가?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야마기시 토시오 교수 등 연구진은 세 번 실험을 해 을의 반응을 살핀 결과를 미국 학술지 국립 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6 29일 자에 실었다. 최후통첩 게임은 원래 서양에서 개발됐지만 우리와 비슷한 일본인이 한 연구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오리지날 최후통첩 게임에 대한 거부율 70%

 

첫 실험은 오리지날 최후통첩 게임이었다. 그러자 2만 원을 받아 든 열 명 중 7(70%)치사하다며 돈 받기를 거부했다. 2만 원이라도 받으면 이익인데 치사하다며 포기한다는 반응이었다.

 

‘1단 변형 최후통첩 게임에 대한 거부율은 35%

 

두 번째 실험은 갑에게 더욱 큰 권한을 주도록 룰을 바꿔 봤다. 을이 거부하건 말건 갑은 자기가 결정한 돈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단 갑은 을의 반응을 알 수는 있게 했다. 연구진은 이 게임의 이름을 무책임 게임(impunity game)’으로 정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갑에게 전권을 주고, 을에게는 갑을 비난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을의 반응은 많이 누그러졌다. 2만 원을 줬을 때 거부하는 비율이 첫 실험(최후통첩 게임)70%에서 35%로 뚝 떨어진 것이다. 갑에게 모욕을 줄 기회가 없어졌어도 3, 4명은 여전히 부당하게 나눠진 돈은 안 받겠다란 태도를 보인 결과였다.

 

‘2단 변형 최후통첩 게임에 대한 거부율은 다시 40%

 

세 번째 실험에서는 갑의 무책임성이 더욱 강화됐다. 이 실험은 비공개 무책임 게임(private impunity game)’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무책임 게임에서는 을의 결정을 갑이 알도록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이것도 없애 버렸다.

즉 갑은 돈봉투에서 얼마든 갖고 싶은 만큼 뽑아 유유히 사라지도록 하고 을은 남은 돈을 가져가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내깔려놓은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을에게 전혀 권한을 주지 않았지만 부당하게 나눠진 돈을 거부한 비율이 40%나 됐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실험의 35%보다 오히려 거부율이 더 높아졌다. 부당하게 돈을 나눈 갑을 공격할 기회가 전혀 없어도 부당하게 나눠진 돈은 안 받는다는 결연한 자세였다.

 

사람이 언제 이성적-합리적으로 결정했나?

 

이 실험은 결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손해를 보더라도 부당함은 못 참는 게 사람이란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은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익만 따진다면 2만 원이라도 집어 들어야 이익이다. 그러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순간 사람에겐 이건 아니잖아라는 분노가 솟구치면서 손해를 감수하는 불합리결정을 내리는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이라는 고전적 명제는 최근 여러 실험을 통해 계속 부정되고 있다. 사람은 감정에 따라 순식간에 결정을 내리며 결정을 내린 뒤 이성을 이용해 그 결정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감정이 약한 사람은 아예 갈팡질팡하며 결정 자체를 못 내린다. 사람에게 이성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결론이다.  

이번 최후통첩 게임에서도 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돈 문제도 사람은 감정으로 결정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은 감정이 이미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차분하게 합리적으로 생각할 틈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근본 전제 틀렸기 때문에 맨날 사후약방문 내놓는다

 

사람은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대전제로 출발하는 경제학은 이런 점에서 근본 명제 자체가 잘못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당할 만하다. 사람은 보통 합리적으로 경제 문제를 결정하지 않는데 오로지 경제학자들만이 모든 사람은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계산해 결정한다’는 현실과 다른 상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경제학이 항상 뒷북만 치는(최근의 미국 경제난에서 볼 수 있듯, 경제학자들은 경제 예측을 하려 무진 애를 쓰지만 예측이 맞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 사건이 터진 뒤 그 사건을 해석하거나 또는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유가 바로 경제학의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인마이포켓 잘 하시는 한국 집권층, 그만 좀 해라

 

손해를 보더라도 부담함을 못 참는 사람의 마음은 진화적으로 갖춰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부당한 분배를 한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원한을 품으면서 부담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한 분배를 거부하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이익이 되며, 이런 심성이 진화적으로 사람에게 갖춰졌다는 해석이다.  

 

사람이 가장 못 참는 게 부당함이라는데 이 나라의 집권층은 부당한 분배를 하는 데 전문가들이다. 돈봉투가 보이면 인 마이 포켓부터 하고 보시는 분들이다. 그러면서 이른바 서민은 부당함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태도가 한국 사회에는 만연돼 있다.

 

그러나 사람은 부당함을 절대 참고 못 넘어가게 돼 있다. 이런 본성은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 집단적으로 항의하고 시간이 지나서도 복수를 하는 침팬지의 행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당함을 못 참는 본성은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 때부터 있어온 본능이라는 것이다.

 

부당한 인 마이 포켓이 판치는 한국에서 못된 갑에게 모진 매질이 가해지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따박따박 읽어내는 북손탐의 재밌는 동영상들>




고흐가 미쳤다고? 이렇게 맨정신인데? 

고흐는 열정만의 화가라고?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은 지식인인데? 

우리가 잘못 배운 빈센트의 진면모!



메시와 호날두 중에 누가 좋냐고? 

난 단연코 호날두!! 

왜냐고? 인간적이잖아!! 

동양인 비하하느라고 눈찢는 메시가 좋으니? 

호날두는 저런 천박한 짓 말라고 메시 같은 것들한테 아래위로 찢어주잖아.   


"아래위로 눈 찢어진 야만인들아!"라면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법이 있다고라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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