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29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이 희대의 사기인 이유 1
  2. 2009.09.05 개보다 늑대가 더 똑똑


대한민국 헌재, 역시 대단합니다. 이 기관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헌법 재단소 같기도 하고, 궤변 공작소 같기도 합니다.

참말로 말은 잘 만들어냅니다. 행정도시에 대해서는 '관습법'이라는 이상한 법개념을 갖다 대더니 이번에는 '절차엔 하자가 있어도 결과는 아주 괜찮다'는 기회주의를 전국민에게 가르치는 군요.

똥 싼 밑 손가락으로 닦는 듯 더러운 느낌을 주는 이 판결에 대해 진보신당이 명쾌한 해석을 내리니 그나마 시원하네요.


진보신당의 판결만이 맞는 판결이네.


진보신당은 이 판결에 대해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판결”이라고 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선진국에서 이런 궤변이 나왔다면 아마 나라가 뒤집힐 정도로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세상에, 절차는 잘못됐어도 결과는 잘했다니.


진보신당의 논평대로 술 마시고도 음주한 적은 없으며,

사람을 죽였지만 살인한 적은 없고
,

이랬다 저랬다 수도 없이 말을 바꿨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해도
 
구렁이 담 넘듯 슬그슬쩍 넘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다른 나라는 사법부가 마지막 양심인데, 어떻게 이 나라는...


제가 미국에서 미국 행정론 강의를 들을 때 교수가 하루는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입법-행정-사법의 3부 중 가장 센 곳이 어디냐?"고. 학생들은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생각해 행정부라고 대답한 경우가 많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교수는

"모든 결정은 궁긍적으로 사법부가 한다"고 설명해 주더군요. 분쟁이 발생할 때 마지막으로 기준을 잡아 주는 게 사법부란 설명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종신직인 대법관을 뽑을 때는 적어도 신문 같은 지식인계는 아주 시끄럽습니다.

'마지막 결정'을 하는 사람인 만큼 하자가 있는 '이상한 사람'이 대법관이 되면 이 인간이 죽을 때까지 미국 사회에 똥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신영철 대법관 사례에서 봤듯, 이 나라는 아주 이상한 사람들만 골라 대법관을 시키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궤변을 판결이라고 만들어내는지...


광고 문구처럼 '때문에'를 적절히 구사한 헌재의 교묘한 궤변


이번 판결도 '문장 구조에 속는' 사람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한 궤변이라고 저는 처음 방송 뉴스를 들으면서 생각이 들더라구요.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인정해 듣는 이에게 "아,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하는구나"라는 안도감을 심어 준 뒤에,


바로 뒤이어 "그러나, 하자있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결정을 뒤집을 정도로 그 하자가 심하지는 않기 때문에 법은 유효하다"는 말로 방심한 사람의 뒤통수를 갈기는 수법이지요. 


'이것은 이것이다. 그러나 이렇기 때문에 이렇지 않을 수 있다'는 문장 구조를 이용한 궤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때문에'라는 부분입니다. 요즘 모 통신사가 "때문에" 노래를 수도 없이 틀어대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때문에"라는 말이 나오면 무지 약해집니다.

"때문에" 앞에 뭘 갖다 붙이든,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재밌는 실험이 있습니다. 복사기 앞에서 새치기를 하면서 어떤 말을 해야 사람들이 양보하는지를 조사한 실험이죠. 

"그냥 먼저 좀 하자"고 하면 그러라고 허락하는 사람이 20%도 채 안 됐답니다. 이유없이 새치기를 허락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새치기 하는 사람이 "제가 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대자 허락률이 50% 이상으로 올라갔답니다.



우습죠? 복사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라고 이유를 대는 것은 사실 이유가 아닌데도, "because~"라는 조건절만 있으면 사람들은 그 내용이 뭐건 간에 "이유가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헌재 판결도 똑 같습니다. 아무런 이유가 안 되는 이유, 즉 "통과된 법은 법이니까"라는 이유로 국민에 사기를 친 것입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헌재의 정치적 판단'이라는 말로 이 수작에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참말로, 오리무중, 해괴망측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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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임수에 아기
-개 잘 속지만, 
늑대는 절대 안 속아

아기가 잘 속는 건 어른을 완전히 믿고 따르기 때문 

 

아기, , 늑대를 가지고 한 실험에서 늑대가 독자적 판단 능력이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기와 개는 사람의 지시를 열심히 따르기 때문에 실험자가 속이면 영락없이 당하지만 늑대는 처음서부터 사람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맞췄기 때문이다.

 

헝가리 외트뵈스 대학의 아담 미클로시 교수 팀은 아기, , 집에서 기른 늑대를 갖고 실험한 결과를 저명한 과학지 사이언스’ 94일자에 실었다.

 

실험 방법은 상자 두 개를 마련하고 그 안에 먹을 것, 장난감 등을 넣어 놓고 아기, , 늑대 더러 찾으라고 한 것이다.

 

실험자는 처음엔 연거푸 A 박스에 물건을 넣고 아기, , 늑대에게 A 박스를 손짓하며 물건을 찾으라고 했다. 지시대로 쫓으면 되니 문제가 없었다.


속였을 때 늑대는 사람 무시... 아기-개는 실험자 뜻 따라

 

그러나 조금 있다가 실험진은 방법을 바꿨다. B박스에 물건을 넣고 A박사를 손짓하니 아기와 개는 열심히 A박스를 계속 헛되이 뒤졌지만 늑대는 안 그랬다.

 

늑대는 눈으로 보이는 증거를 토대로 A가 아닌 B 박스에 물건이 있다는 독자적 판단을 하면, 사람이 아무리 A박스를 손짓하건 말건 바로 B박스로 직행했다.

 

비록 사람에게 잡혀 사람이 기르고 있는 늑대였지만 야생에서 독자적 판단을 하며 살았던 기질 그대로를 물려받아 사람의 속임수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기까지의 실험에서 연구진은 1차 결론을 얻었다. 아기와 개는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설사 지시하는 사람에 문제가 있어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었다. 반면 늑대는 사람의 지시를 따르는 동물이 아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험자를 바꾸면 개는 안면몰수... 아기는 계속 실험자 뜻 따라  

 

연구진은 이어 실험에 약간의 변형을 준다. 실험하는 사람을 바꾼 것이었다.

 

ㄱ이라는 사람이 실험을 주재하다가 ㄴ이라는 사람으로 주재자가 바뀌자 아기, , 늑대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늑대는 처음부터 사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자가 바뀌건 말건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개는 실험 주재자가 바뀌자 새로운 사람이 계속 A 박스를 손짓해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늑대처럼 자신의 판단을 따르기 시작했다.

 

앞 전 실험자는 주로 물건을 A 박스에 넣고 A 박스를 손짓했지만, 사람이 바뀐 이상 똑 같은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독자적 판단에 따르겠다는 듯한 자세였다.

 

반면 사람의 아기는 우직했다. 실험자가 바뀌건 말건 A 박스에 물건이 있다고 손짓하면 설사 B 박스에 물건이 있다는 시각적 정보가 일부 존재하더라도 계속 A 박스만 뒤졌다. 계속 허탕을 치면서도.

 

개는 한 사람에게 배우고, 아기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운다
 

이런 행동의 결과를 연구진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개에게는 사람과의 11 관계만 중요할 뿐, 어른(개에게 사람은 어른) 전체로부터 배울 필요는 없다. 즉 배우는 정보를 일반화해 모든 상황에 맞는 정보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아기는 어른 전체로부터 배운다. 연구진은 아기는 어른과의 11 관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른 전체로부터 여러 지식을 배워 그것으로 넓은 세계를 인식하는 일반적 정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을 무조건 믿고 따르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른이 맘만 먹으면 아기들 얼마든지 속일 수 있어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르는 게 인간의 아기이기 때문에 어른은 아기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 늑대와 비교하면 늑대는 처음부터 사람의 교육이란 게 먹히기 힘들고, 개는 한 사람에게는 속아도 모든 사람에게 속지는 않지만, 아기는 어른 일반에게 끊임없이 속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른을 믿게 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관점이 하나 나온다. 얘들을 가르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들을 망치려면 엉터리 가짜 교육을 시키면 된다. 그대로 믿고 따라오니까.

 
한국 어른들은 한국 아기들 교육 제대로 시키고 있나?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 종교인들은 우리에게 어린애를 다오라고 항상 외친다. 어린이 성경학교 등등이다. 그러면서 종교인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어린이를 주면 뼛속까지 철저한 종교인을 만들어내겠다.

 

여기서 문제 하나. 한국의 집단적 어른들은 자라나는 새싹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가? 친구-세상과 돕고 살도록 가르치는가, 아니면 무찌를 적으로 여기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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