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애플에 친화적이라 아이폰 나왔을까
정부가 기업에 친화적인 나라 = 거덜날 나라


아이폰이란 전화기 한 대가 지구촌 경제계에 풍랑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아이폰의 파괴력은 ‘영역 부수기’에 힘입은 것이다.

휴대전화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전에는 삼성전자-SK 같은 대기업(비즈니스)이 결정했다면, 아이폰에서는 소비자(컨슈머)가 결정하도록 바꾸었다는 것이 아이폰 열풍의 원인이다.

국내에서 철통처럼 지켜지던 여러 규제들이 아이폰 때문에 하나하나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넘도록 한국인의 귀를 때렸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핸드폰 쓰면서 느끼는 한국의 친(親)기업, 반(反)소비자 정책

아이폰 이전에도 한국과 미국의 휴대폰 시장에 대해서는 ‘한국은 업체 위주, 미국은 소비자 위주’라는 평가가 있었다.

실제로 사용해 보면 미국의 휴대폰이 사용하기 간단하고 요금도 저렴했다면, 한국의 휴대폰은 ‘전화기는 폼 나지만 쓸모는 떨어진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었다.

한국 휴대폰에는 별별 기능이 무지하게 많이 들어가 있지만, 이런 기능들은 별로 쓰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자칫 잘못 쓰면 요금이 부과되는 것들이었다. 별별 서비스가 다 들어가 있지만 소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업체를 위해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 기본적인 통화 기능 등은 미국에서 쓸 때보다 확실히 한국 핸드폰이 떨어졌다. 폼나는 전화기에 불편한 통화 기능, 이게 바로 한국의 핸드폰이었다. 아이폰 이전에도.

그러다, 아이폰이 나왔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많이 알게 됐다. 그 동안 한국 사회를 주무르는 아저씨들이 어떤 짓을 해 왔는지를.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를 강제로 막아 놓고(와이파이 등), 업체들이 더 많은 수익을 긁어 모을 수 있도록 도와줘 왔다는 것을.


한국 경제를 거덜낼 수 있는 악마의 주문, "비즈니스 프렌들리" 

비즈니스 프렌들리. 말은 좋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잔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어떻게 해야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되느냐는 질문이다. 한국에서 주장되듯, 기업에 친절한 정책을 펴면 기업 하기 좋아질까?

일부 경제학자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뛴다. 정부가 기업에 친화적이면 ‘나라가 거덜 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이폰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 정부가 애플이란 업체에 친화적이어서, 애플이 만드는 컴퓨터·소프트웨어가 잘 팔리도록, 또는 반품이 힘들도록 만들어준다고 가정해보자.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당장은 애플이 좋을 수 있다. 일단 소비자가 산 물건에 대해서는 반품, 애프터서비스의 책임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애플은 망하게 돼 있다. 반품을 안 해줘도 되니 품질은 점점 떨어지고, 소비자들은 쉽게 반품이 안 되는 애플 제품을 멀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 사기가 겁나는, 한국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소비자 보호

물건을 살 때 철저히 조심하는 태도를 필자는 한국에서 배웠다. 미국에 살 때는 궁금한 제품이 있으면 ‘일단 한번 사서 써봐’라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마음에 안 들면 정해진 기간 안에만 가게에 가져가면 거의 100% 반품을 해준다.

부담이 적으므로 ‘일단 사고 보는’ 태도가 몸에 배고, 그래서 미국인들은 또 헤프게 돈을 쓰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물건 사는 게 겁난다. 반품이 거의 안 되거나, 반품을 받으려면 거의 투쟁 수준까지 감정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 극히 조심하게 되고, 되도록이면 안 사는 게 편하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쇼핑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 놓는 환경이 기업에 친화적일까? 나라 경제가 잘 되려면 사실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 중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공정한 심판관이 돼야 한다.

정부가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는다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게 적용돼야 사업할 마음이 생기고, 이른바 '기업가 정신'도 발휘되는 것이다.

심판이 공정하지 않고 어느 쪽 편을 들면 어떻게 되나? 최근 어느 대학 축구팀에서 문제가 됐지만, 심판이 어느 한쪽 편을 들면, 경기는 난장판이 되고, 재미 또는 경기 기술의 발전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정부가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한다면, 그건 사실 기업 쪽이 아니라 소비자 쪽이어야 한다. 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기업과 비교한다면 소비자는 철저히 약자이며, 애플 사례에서 보듯, 소비자 편에 서야 21세기에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 위장된 '소비자 무시' 주의

물론,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필요한 지역도 있을 수는 있다. 미국의 사람도 안 사는 농촌 지역이라든지, 한국의 붕괴돼 가는 농촌 지역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해야 한다. 엄청난 혜택을 주지 않으면 기업들이 절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전체가 그런 깡촌인가? 수도권이 그런 무인지경인가. 서울처럼 엄청나게 큰 대도심 지역 중에서 지역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구호로 내걸며 공공연하게 소비자를 무시하는 지역이 서울 말고 단 하나라도 있는지 알고 싶다.

결국 '비지니스 프렌들리'는 가진 자들이 소비자-국민-근로자의 눈을 가리기 위한 세뇌용 선전구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한국 소비자들은 이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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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가 틈만 나면 심판에 대한 불신감 부추겨
"인간의 한계까지 포용하는 게 스포츠"라는 사실 되새겨야


국제적인 경기를 한국 방송으로 보면 경험하게 되는 특이한 현상이 있다. 바로 심판에 대한 불신의 멘트들이다. “오늘 심판이 이상합니다” “아, 심판이 저러면 안 되죠” 등등.

근본적으로 심판의 자질을 의심하거나, 또는 심판이 매수당했다, 어느 한쪽 편만을 든다는 의혹을 표현하는 발언들이다.

국제 경기를 보면서 한국 팀을 응원하는 한국 관중들 입장에서는, 심판이 아무리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해도, 응원하는 마음 때문에 우리 편에 파울을 줄 때마다 심판에게 반감을 갖기 쉽다. 인간의 본성이다.

열광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관중에게 장내 아나운서 또는 TV 중계자가 “심판이 저러면 안 되죠”라고 발언하는 순간, 그 심판은 린치의 대상이 되기 쉽다. 관객의 공분이 그 심판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심판에 대한 의혹의 마음이 개인적으로 들더라도, ‘공정한 해설자’를 자처하는 TV 해설자 등은 이를 함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게 원칙이다. 그런 면에서 과연 한국 방송의 해설자들이 이런 자질을 갖췄는지는 의문거리다.

이번 동계 올림픽의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한국 여자 팀이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고도 실격패당한 장면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심판이 잘못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본다면 그 심판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결정했을 것이다.

한국에 일곱번 편파 판정한 심판이 올림픽 결승전 심판 될 수 있나

이 심판에 대해 한국의 신문·방송들은 경기 당일은 물론 그 다음날까지도 “김동성을 탈락시킨 바로 그 호주 심판” “한국 팀에만 여태껏 일곱 번 편파 판정을 한 그 심판”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 결과는? 서울 주재 호주 대사관에 대한 폭파 협박과 대피 소동이었다. ‘심판=국가대표=정부기관’이라고 착각하는 폭파 협박범의 의식도 웃음거리지만, 이런 행동을 원격 조종한 책임은 언론에도 있다.

생각해보자. 그 호주 심판이 한국 팀에게만 일방적으로 일곱 번씩이나 편파적인 판정을 지난 8년 간에 걸쳐 해왔다면 국제심판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충분히 자격을 갖췄기에 가장 중요한 결승전의 심판을 맡은 것 아닐까?

인간의 한계까지 포함하는 게 스포츠의 정신

미국의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면, 아나운서나 해설자는 철저하리만큼 중립적인 발언만 한다. ESPN처럼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만이 아니다. 지역 시청자만 보는 지방방송도 아나운서·해설자는 철저히 중립이다.

경기장 청중이 광적 흥분 상태인 대학농구(NCAA 농구)를 중계할 때도 지방방송 중계자들은 관객석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철저히 중립을 유지한다. “아니, 우리 동네 방송이 왜 저 모양이야?” “저 사람들은 화도 안 나나?”라는 야속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미국 방송은 비디오 판정으로 분명히 심판의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심판을 비난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게 스포츠다’라며 심판을 보호한다.

박지성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가. 최선을 다 하지만 인간의 실수까지도 포용되는 게 바로 스포츠·축구의 세계라고….

불신사회에 살지만, 근거없는 불신 증폭은 말아야

심판의 편파 판정에 대해 한국인이 특히 민감한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에 살기 때문에 먼저 의심부터 하는 데 익숙하고, 또한 그간 심판 매수 스캔들을 끊임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는 천신일 대한레슬링협회장이 ‘박연차 게이트’로 재판을 받던 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국제 심판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폭탄발언도 했다. 국제적 망신거리지만, 국내에서는 조용히 넘어갔다.

사사건건 심판 판정에 대해 ‘국민적 공분’을 표출하는 한국인에게, 그리고 그 분노에 기름을 퍼붓는 한국 언론에게 외국인들이 “뭐 눈에는 뭐만 뵌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심판의 부당한 판정에 대해서는 적법한 경로를 통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재발을 막으면 된다. 그게 바른 길이다. 인간사·세상사에 대해 많은 걸 배우게 해주는 무대가 스포츠다.

이렇게 좋은 스포츠를 하고, 보면서 ‘심판은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다’고 믿으면 우리만 손해다. “심판이 저러면 안 되죠”라는 한국 방송만의 멘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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