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만 나서면 모멸감 느끼게 만드는 한국의 도로 문화

“건강해지려면 BMW를 하라”는 말이 있다. 버스(Bus) 타고 전철(Metro) 타면서 걸으라(Walk)는 뜻이다.

서울처럼 BMW 하기에 '물질적 조건'이 좋은 곳도 드물다. 전철·버스·마을버스가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울의 BMW 하부구조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상부구조, 정신상태는 약간 미쳐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을 짐짝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극히 일부' 버스 운전사들


어느 날 저녁, 버스를 타고 운전사 옆의 앞쪽 좌석에 앉았다. 이 운전사는 계속 뭔가 혼잣말을 시부렁거리며 거칠게 운전했다. "저 운전사, 저러다 사고 내겠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리의 신호등이 빨간 정지신호로 바뀌었는데도 그 운전사는 더 강하게 악셀레타를 밟았다. 항상 그렇듯.

그 순간, 보행신호로 바뀌는 걸 보고 한 남자가 옆도 보지 않고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버스는 간발의 차이로 이 남자를 겨우 비켜가고, 한국의 신호등 체계와 운전자를 100% 신뢰한 이 남자는 생을 마감할 뻔 했다. 우리 모두가 잘 알듯, 한국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믿는 놈을 골로 보내는 시스템.....

여러 나라를 가 봤지만 후진국, 미개국 빼고 살만큼 산다는 나라에서, 세계 경제 10위권이라는 나라에서, 스스로 문명-문화국,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나라에서, 이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빨간 불이 켜지면 멈추고, 녹색 불이 켜지면 전진하라는)가 거의 완전히 철저하게 무시되는 나라도 드물다.  

어차피 안 지킬 거면 횡단보도에 칠할 페인트나 아끼던지...

주법이니 건너지 말라는데... 한국에서 이런 표지판 본 적 있나?

한국에서 기가 막힌 것은 횡단보도에서 차와 사람이 마주치면 100% 차가 우선권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럴 거면 왜 비싼 페인트 값을 들여 횡단보도를 그려 놓는지 모르겠다. 횡단보도든 아니든, 파랑불이든 빨강불이든, 자동차가 우선권을 주장할 작정이라면 왜 비싼 돈을 들여 철마다 횡단보도에 페인트 칠을 하고, 여기저기다 신호등을 설치하는가?
 
그냥 다 아스팔트 빛 차도로 놔두고 사람은 조심해서, 도로의 주인인 차를 피해서
조심조심 길을 건너면 되는 것 아닐까? 횡단보도에 칠하는 페인트 값만 1년이면 수십, 수백억이라는 돈을 쓰는 모양인데, 그냥 돈을 아끼고 그 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나 하지.  

차도만 자동차가 주인이 아니다. 보도도 자동차가 점령한 지 오래다. 인도를 완전히 점령한 차들은 "차도로 내려가 걸으면 될 것 아냐?"라고 보행자에게 명령을 내린다. 서울 거리가 주는 모멸감이다. 

옛날엔 이렇게 인도를 점령하는 차를 단속하더니 이젠 그런 단속도 없다. 모든 인도의 주차장화가 진행된 게 서울이고, 한국이다. 

횡단보도에서 철저히 인권 무시하는 사람들이
입만 열면 '글로벌 스탠더드'


한국 언론들이 특히 입에 잘 올리는 말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한국 방송이나 신문에서 이 말을 들으면 난 짜증부터 난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게 여러 가지 있겠지만, 건널목-신호등처럼 간단하고 세계 모든 사람이 아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따로 있는지 묻고 싶다.
금융 시스템처럼 엄한 글로벌 스탠더드 말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글로벌 스탠더드부터 지키고 나서, 글로벌 스탠더드든, 로컬 스탠더드든 얘기를 하자.  

이런 초간단, 극히 초보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국에선 제대로 지켜지는 적이 거의 없다. 거의 모두가 이 룰을 어기고 있고, 지키는 사람이 신기할 정도다. 걸을 때는 사람 편이지만, 차만 타면 차 편이다. 

뭐, 이래. 너희들은 평생 차에서 안 내려올 참이냐? 너희들은 평생 운전대에 앉아 있을 참이냐? 그래 제발 그런 원칙을 지켜라. 그래 봐야, 느는 것 뱃살이고 심장병이다.   

당신은 건널목에 사람이 건너려 대기하고 있을 때 차를 세워 줘 봤는가? 아니,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사람이 건너고 있을 때 차를 들이밀며 위협하지 않고 제때 정지해 줘 횡단하는 사람이 편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줘 봤는가?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렇게 간단한 것이건만, 많은 한국인들은 이런 것도 못 지키면서 입으로만('주둥이로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국제표준을 말한다. 징그러운 '한국형 글로벌 스탠더드'....

사막 한가운데 '일단 멈춤(Stop)' 표지판을 세워 놓아도, 반경 수킬로 미터 이내 가시거리에 사람 하나 없어도 '지킬 건 지키는' 나라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그랬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한밤중 무인지경일 때는 신호를 좀 어기는 걸 뭐라고 그러는 게 아니다. 적어도 대낮에,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 기다릴 때는 양보해 줘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운전자들은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차 대가리를 들이밀며 밀어 붙이려 든다. 상식없는, 무지막지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걸을 때마다 느끼는 한국의 '힘있는 사람이 다 먹어' 논리

영국의 건널목. (출처=위키피디아)

횡단보도에 대한 '한국적 글로벌 스탠다드'는 힘의 논리다. 논리고 나발이고, 기준이고 룰이고 상관없이, 힘있는 사람이 밀어붙이는 게, 그래서 이기는 게 바로 룰이라는 정글의 논리다.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도 많고 논란도 많지만, 인권-민주주의는 그냥 간단히 생각해서 '사람이 먼저' '사람이 중요하다'는 믿음이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 그 어디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는지 궁금하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하지만, 그건 당신의 머릿속 얘기고, 일상 생활에서 한국인은 정말 '사람이 먼저'를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런 인권유린적 태도는 거리에서 바로 확인된다. 

벌건 대낮에, 남들이 다 보는 대로에서 인권유린을 하는 사람들이, 또 '국격'이란 말은 잘 쓴다. 돈 들여 횡단보도 뼁끼 칠 하고, 그 장소를 인권유린 연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뻑 하면 '한국의 국격이 어쩌고 저쩌고' 떠든다. 우습다.

행인과 소, 자전거와 승용차가 마구 섞여 다니는 인도 거리를 보면서 당신은 '인도의 국격'을 떠올리는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국격이 저쩌고 저쩌고 하면 우습지 않을까? 국격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가 어쩌다 보도하는 한국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의 길거리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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