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햇볕정책이란 명목으로 10년간 무조건적인 원조를 퍼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부터 쥐꼬리만한 호의도 얻어내지 못했다”(B.R. 마이어스 저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172쪽)이란 소리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신기하지요. 남한이라면 저렇게 원조를 받으면 황송해서라도 뭔가 보답을 하려고 국민적 노력을 할 것 같은데, 북한은 도대체 그런 게 없으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 햇볕정책이 떫은 뒷맛만 남기고, 결국 정권을 극우 세력에게 내준 데는 받기만 하고 되돌려주는 데는 거의 무관심했던 북한에도 책임은 없다고 할 수 없지요.


헌데, 남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이러한 행동 양식은, 마이어스의 책을 읽으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의 추론은 이런 거지요. 일제시대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 ‘순결한 일본 민족’이란 신화를 심어놓는다.


도덕성에서 지구 최고인 일본인들을 가미(神)이 보우하시니, 질낮은 조선인들은 이를 배우라는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일본이 중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면서 2등 국민 조선인은 일본인의 뒤를 따라 만주로, 동남아로 진출하면서 3등 이하의 열등 국민들에게 폭력을 행하며 2등 국민으로서의 뿌듯한 자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느닷없이 미국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일본인들이 놓고 간 ‘순결한 민족’의 빈 자리로 조선인들은, 남이나 북을 가릴 것 없이, 쏙 들어간다.


남한은 그나마 국제화-세계화를 거치면 이런 ‘순혈 인종주의’ ‘인종적 민족주의’가 옅어지지만, 북한은 그런 과정을 거칠 기회가 전혀 없었을뿐더러,


로동당 선전선동부가


△천황을 김일성으로


△후지산을 백두산으로


△90도 숙여 절하는 대상을 도쿄의 황궁에서 주석궁으로


교묘히 바꿈으로써,


북조선인들의 기존 인종주의를 그대로 온존시키면서

김씨일가에 대한 개인숭배도 달성해낸다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북한인은 순혈민족이기에,

질낮은 미국-일본-소련-중국-남한 떨거지들이 돈을 벌어다 갖다 받치면,

그냥 “그래 너희는 너희들의 더러운 욕심으로 그렇게 돈을 벌었고,

우리 순결한 북조선 인민들은 사회주의를 지키느라 수고했으니 너희들 돈쯤이야 꽁으로 써도 되지”하면서 받아가서는,

되갚을 생각은 별로 해본 적도 없다는.....


마이어스의 이 ‘북한판 일본제국주의식 인종적 민족주의’ 설명을 듣고나면,

북한이 저렇게 비이성적으로 항상 고자세인지가 겨우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책이 스스로 자찬했듯 ‘김정일이 권력을 잡은 후 나온 북한 관련 서적 중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이 책을 북손탐과 함께 천천히 몇 차례에 걸쳐서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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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civilization과 culture란 단어가, 문명-문화로 각각 번역된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헌데, 박홍규 교수는 책 ‘인문학의 거짓말’에서 이 번역어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한다.

문명(文明)과 문화(文化)에는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는데, 그렇다면 모든 문명과 문화는 글월(文)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남미의 마야, 잉카, 인디언 문명-문화에는 문자가 없었는데, 우리의 문명-문화 개념에 의한다면, 그곳에 아무리 찬란한 유물과 생활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야만인에 불과하고, 그냥 개-돼지처럼 죽여도 된다는 소리가 되나?


헌데, 원래 서구어 civilization과 culture에는 ‘글월 문’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지 않다.


civilization은 ‘civil(도시민)이 되다(-ize)’라는 의미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장사를 하든 기능공이 되든 도시민-시민이 되면 그는 문명화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총칭하는 게 civilization이다. 도시의 장사꾼-기능공이 글월(文)에 통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컬처 역시 마찬가지. 컬처는 cultivate(배양하다, 경작하다)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농작물을 키운다는 의미가 어원이고, 그래서 여기서 ‘소양을 키워내다’라는 의미로 발전한 단어다. 그냥 뭔가를 키워낼 수 있고, 경작이든 배양이든 양육이든 소질개발이든 속에 들어있는 것을 끄집어내 발현시킬 수 있는 기술만 있다면 그게 바로 컬처다.


서구에서 배양-양육을 잘하는 사람이면 그래서 문화인이 될 수 있지만, 컬처를 文化로 번역한 동양에서는 글월을 깨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농사나 장사를 잘해도 문화인이 될 수 없다.


‘사+농공상’이 바로 이런 동양 문화를 말해준다. 사(선비)가 지배하고, 농공상은 아무리 잘나도 하위계급이다.


이런 번역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박 교수는 동양 문화가 얼마나 문자를 사랑하는지를 지적한다. 문자 사랑이 지나쳐 한국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자-글월에 통달한 분을 최고로 친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이몽룡, 지금으로 치면 서울대 나온 분들, 서울대를 나오신 데다가 더해 그 어려운 사법고시까지 패스하신 분들을 영웅(양심적 인물) 중의 영웅으로 치기에 서울법대 나온 법관들이 하는 일은 뭐든지 ‘착하고 순결한 마음 100%’로 여기는 이상한 심리로까지 발달했다.


‘최고로 글월에 통달한 사람은 최고로 똑똑하고 게다가 양심적이기까지 하다’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진리는, 결국 ‘양승태 대법원장’ 같은 사태를 만들어낸다. ‘최고로 똑똑한 인재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믿어버리는, 그래서 대법원이 “사법의 독립성”을 외치면, 아무리 개 같은 판결을 해도 그냥 박수를 쳐야만 하는 한국의 문명과 문화......


인문학(Human Studies 또는 Humanities)은 원래 그냥 인간에 대한 연구이기에, 인학(人學)으로 번역하는 게 적확하건만, 여기에 굳이 글월 문(文) 자를 넣어 인문학이라고 번역하는 동양인의 센스... ㅎ


그래서 한국에선 주류 인문학이 난리다. CEO-유한마담을 위한 교양 인문학 시리즈들, 인문학을 알아야 돈이 된다는 푸닥거리들, 시사 교양 강요에, ‘아는 만큼 보인다(=학벌이 높을수록 그림 감상도 잘한다)’는 방정식 등장까지 난리가 아니다.


박홍규 교수는 이를 ‘주류 인문학’으로 규정하고, “당신들끼리 열심히들 잘해보세요”라고 권한다. “그게 인문학을 망치는 길이지만”이라는 단서와 함께.


그러면서 자기는 “비주류 인문학, 즉 비판 인문학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서양 것은 무조건 위대하니 모조리 받아들여야 한다(=제국주의적, 인종차별적 인문학도 오케이)”는 탐욕과 배신의 한국 인문학자들 주장을 물리치고, 따질 건 따지고 비판할 건 비판한 뒤 외국 인문학을 받아들인다는 게 그의 비주류 인문학이다. 


그래서 그는 제국주의적-인종차별적 해외 인문학을 무차별 공격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재미있고 유익하다.


박홍규 교수의 돈키호테적 인문학을 쫓아가는 두 번째 순서를 유튜브 동영상으로 만나보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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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人)이 ‘모든 사람’이란 의미지만, 

공자 시대에는 ‘人 = 지배자, 귀족’이었다고. 


그리고 民은 원래 포로에서 비롯된 말로, 

눈 찔려 장님이 된 사람을 뜻한다는 후덜덜한 야긔....


지배자가 자신들을 위해서 만든 게 인문학-학문(文). 

그래서 文(인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지배자 편. 


이런 사정을 알고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데, 

요런 배경 사정을 쏙 빼먹고 가르치는 한국 인문학의 거짓말들… 


특히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해, 

요런 배경 지식, 

즉 “고대 그리스는 지독한 노예제 사회였으며, 

그 자체로는 훌륭했던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였지만, 

주민의 절대다수인 노예(현대로 치면 노동자)를 제외하고 이뤄진 시민만의 민주주의였기에 한계도 갖는다”는 걸 살짝 빼먹고 가르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 3인이 말한 내용은, 


‘최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온 최고의 지혜’로 인문학자들이 사기를 칠 수 있었다는 얘기….


그렇기에 그 잘났다는 플라톤이 말한 ‘철학자 왕’, 즉 “최고의 지도자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명제를 이용해서,  


유신헌법을 추진했던 기획자들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좋은 지도자는, 가장 똑똑한 사람을 골라내는 거고, 그게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다”라면서 


박정희가 왕이 돼 영원히 집권할 수 있는 유신헌법을 스리슬쩍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유신헌법 시작되면서 플라톤의 ‘국가’ 같은 고전 읽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그래서 우리의 돈키호테 박홍규 교수 “노예제 빼고 고대 그리스 철학을 말하지 말라. 그리고 서양 것이라면 뭐든 좋다는 식으로 가르치지 말라. 나쁜 측면이 있으면 그걸 분명히 지적하고 가르쳐야지”라고 일갈. 


동서양 인문학의 온갖 거짓말들, 그리고 이런 거짓말들은 21세기 한국에서 ‘인문학의 부활’이라는 허울좋은 유행을 타고 더욱더 사기가 횡행하고 있으니…. 


박홍규 교수와 함께 자본주의의 ‘마케팅 고문’을 벗어나기 위한 대장정의 첫 걸음을 작년에 박 교수가 펴낸 책 ‘인문학의 거짓말’로 시작해 봅니다. 자 그럼 출바아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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