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civilization과 culture란 단어가, 문명-문화로 각각 번역된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헌데, 박홍규 교수는 책 ‘인문학의 거짓말’에서 이 번역어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한다.

문명(文明)과 문화(文化)에는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는데, 그렇다면 모든 문명과 문화는 글월(文)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남미의 마야, 잉카, 인디언 문명-문화에는 문자가 없었는데, 우리의 문명-문화 개념에 의한다면, 그곳에 아무리 찬란한 유물과 생활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야만인에 불과하고, 그냥 개-돼지처럼 죽여도 된다는 소리가 되나?


헌데, 원래 서구어 civilization과 culture에는 ‘글월 문’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지 않다.


civilization은 ‘civil(도시민)이 되다(-ize)’라는 의미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장사를 하든 기능공이 되든 도시민-시민이 되면 그는 문명화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총칭하는 게 civilization이다. 도시의 장사꾼-기능공이 글월(文)에 통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컬처 역시 마찬가지. 컬처는 cultivate(배양하다, 경작하다)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농작물을 키운다는 의미가 어원이고, 그래서 여기서 ‘소양을 키워내다’라는 의미로 발전한 단어다. 그냥 뭔가를 키워낼 수 있고, 경작이든 배양이든 양육이든 소질개발이든 속에 들어있는 것을 끄집어내 발현시킬 수 있는 기술만 있다면 그게 바로 컬처다.


서구에서 배양-양육을 잘하는 사람이면 그래서 문화인이 될 수 있지만, 컬처를 文化로 번역한 동양에서는 글월을 깨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농사나 장사를 잘해도 문화인이 될 수 없다.


‘사+농공상’이 바로 이런 동양 문화를 말해준다. 사(선비)가 지배하고, 농공상은 아무리 잘나도 하위계급이다.


이런 번역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박 교수는 동양 문화가 얼마나 문자를 사랑하는지를 지적한다. 문자 사랑이 지나쳐 한국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자-글월에 통달한 분을 최고로 친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이몽룡, 지금으로 치면 서울대 나온 분들, 서울대를 나오신 데다가 더해 그 어려운 사법고시까지 패스하신 분들을 영웅(양심적 인물) 중의 영웅으로 치기에 서울법대 나온 법관들이 하는 일은 뭐든지 ‘착하고 순결한 마음 100%’로 여기는 이상한 심리로까지 발달했다.


‘최고로 글월에 통달한 사람은 최고로 똑똑하고 게다가 양심적이기까지 하다’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진리는, 결국 ‘양승태 대법원장’ 같은 사태를 만들어낸다. ‘최고로 똑똑한 인재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믿어버리는, 그래서 대법원이 “사법의 독립성”을 외치면, 아무리 개 같은 판결을 해도 그냥 박수를 쳐야만 하는 한국의 문명과 문화......


인문학(Human Studies 또는 Humanities)은 원래 그냥 인간에 대한 연구이기에, 인학(人學)으로 번역하는 게 적확하건만, 여기에 굳이 글월 문(文) 자를 넣어 인문학이라고 번역하는 동양인의 센스... ㅎ


그래서 한국에선 주류 인문학이 난리다. CEO-유한마담을 위한 교양 인문학 시리즈들, 인문학을 알아야 돈이 된다는 푸닥거리들, 시사 교양 강요에, ‘아는 만큼 보인다(=학벌이 높을수록 그림 감상도 잘한다)’는 방정식 등장까지 난리가 아니다.


박홍규 교수는 이를 ‘주류 인문학’으로 규정하고, “당신들끼리 열심히들 잘해보세요”라고 권한다. “그게 인문학을 망치는 길이지만”이라는 단서와 함께.


그러면서 자기는 “비주류 인문학, 즉 비판 인문학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서양 것은 무조건 위대하니 모조리 받아들여야 한다(=제국주의적, 인종차별적 인문학도 오케이)”는 탐욕과 배신의 한국 인문학자들 주장을 물리치고, 따질 건 따지고 비판할 건 비판한 뒤 외국 인문학을 받아들인다는 게 그의 비주류 인문학이다. 


그래서 그는 제국주의적-인종차별적 해외 인문학을 무차별 공격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재미있고 유익하다.


박홍규 교수의 돈키호테적 인문학을 쫓아가는 두 번째 순서를 유튜브 동영상으로 만나보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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