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만한 질문을 물었나?
△대답한 사람은 제 정신인가?' 등의
전제조건 충족되지 않는 여론조사 결과는
참고할 필요도 없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한참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여론조사 결과를 믿는 것 같아 한 마디 하렵니다.
피에르 부르디외 라는 프랑스 학자가 여론조사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밝혔다고 하네요.(강준만 저 ‘각개약진 공화국’에서 재인용)
그의 의견에 따르면 첫 번째, ‘대답하는 모든 사람이 자격을 갖췄다고 가정하고 물어 그 결과를 집계하는 것’이 여론조사의 문제랍니다. 물어봅시다. 선거 때가 되면 주변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하게 되지만, 정확한 식견을 가진 사람을 얼마나 만나 보셨나요?
가난뱅이가 한나라당 지지하는 이상한 나라인데…
가난뱅이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이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 같은 이상한 현상을 볼 수 있지 않나요?
부르디외의 두 번째 문제 제기는 ‘여론조사는 과연 물을 만한 질문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질문을 하는가’라는 것이랍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죠.
완전히 중립적으로 물어야 하고, 그래서 여론조사를 하면 설문지 내용도 공개가 돼야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가요?
질문 내용 만드는 게 여론조사 업체의 전문 과목인데, 정말 제대로 만들고 있나?
대개 거두절미하고, 한나라당 후보 몇%, 야당 후보 몇%, 이렇게 나오잖아요? 세상 모든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여론조사 전문가야말로, 이 아-어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전문가들이 선거철에 돈 받고 여론조사를 하는데, 중립적-객관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닌가요?
여론조사 한다고 하면 당신은 대답할 것인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믿어?
부르디외는 프랑스 사람이니까 말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한국에선 더 중요한 문제가 또 있습니다. 여론조사에 과연 솔직히 말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하는 점입니다.
누굴 찍을 거냐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답을 안 할 겁니다. 괜한 봉변 당하기 싫어서입니다. 물론 터놓고 “난, 무슨 당 찍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 사람들의 답변만이 사실상 여론조사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또 여론조사라는 게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즉 답변과 실제 투표 행동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실 예전에 YS-DJ가 격돌했을 때 친지들과의 모임에선 “DJ가 돼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다가 막상 투표장에서는 YS를 찍어 지금까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대답과 실제 행동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찍어 놓고도 거짓 대답 하는 게 한국의 분위기인데…
그래서 최근 선거에서는 출구조사를 해도 실제 투표 결과는 다르잖아요? 벌써 투표를 한 뒤에도 “누굴 찍었어요?”라는 질문에는 가짜 대답을 내놓는 게 한국 사람들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다들 알잖아요?
결국 이상의 내용을 정리한다면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여론조사를 진짜라고 믿으려면 네 가지 전제 사항, 즉
1. 답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답변한 결과다
2. 질문이 객관적이었다
3. 솔직히 대답할 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갖춰져 있다
4. 대답과 행동은 일치한다
는 전제조건이 만족돼야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 어느 하나도 만족되는 사항이 현재 한국에는 없는 것 같네요.
그래서 저는 여론조사에 신경 안 쓸 겁니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좋아할 만한 후보를 찍을 생각입니다. 누굴 찍을 거라고 친지-동료들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 또 설문조사 요원에게는 무조건 “대답하기 싫다”고 할 겁니다.
많은 분들이 저처럼 행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여론조사 결과를 믿는다는 건, 우스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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