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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M 재범 군의 ‘사적 인터넷 대화’의 결말은 결국 이렇게 나는군요. 한 번 말 실수 때문에, 공적 발언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인터넷 낙서 정도 가지고 사람이 이렇게 매장될 수가 있군요.
‘미국 살다가 한국 와서 사는 사람’으로서 제 경험을 한 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처음에 미국 가니까 처음 한 2주 동안은 사물이 2개로 보이는 ‘겹시’ 현상 때문에 일상 생활을 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 살아나가게 됐죠.
그렇게 미국에 가서 오래 살다가 근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참 여러 가지로 불쾌하고 불편했으며 아직도 이런 불편함은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적응했듯 이것도 곧 극복되겠죠.
이렇게 문화가 바뀌면 누구나 힘들게 마련이고, ‘낯익은 그곳’이 생각나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충격 또는 향수병은 선진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더 크게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해외 여러 곳을 가서 교민들을 만나 보면 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부모는 외국에 나가 한 3년쯤 살고 나면 ‘신물’이 올라와서 더 이상 못 살겠기에 한국으로 돌아오려 하는데, 아이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것입니다.
“갈려면 아빠 혼자 가. 우린 여기 그냥 살께”라는 게 자녀들의 말입니다. 애들도 알 건 다 알기에 이러는 거죠.
물론 자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환국’을 감행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케이스는 아들이 아주 어릴 때(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국으로 갔다가 아들이 고1 때 한국으로 되돌아온 집이 있습니다.
그 아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3년 동안 울면서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고통을 잘 이겨내고 현재는 대학에 진학해 잘 다니고 있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대단한 의지의 학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죠.
반대로 제가 아는 한, 한국 학생이 고1 때 미국에 와서 3년간 눈물로 지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 시스템 또는 학생에 대한 압박에는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미국 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 문제 학생도 있지만 대체로 학교 잘 다닙니다. 제가 살던 곳은 한국 학생이 학교의 3분의 1쯤 차지하는 곳이었는데 한국 학생들 등쌀에 미국 학생들이 불편해 할 정도로 한국 학생들 재미있고 당당하게 학교 잘 다닙니다.
어른들의 삶도 태평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학생들의 삶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천국 같은 미국에서 생활하던 한인 청년이 연예인으로 성공해 보겠다고 한국에 왔고 또 연습생이란 한국 특유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 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연습생 시절이라는 게 힘든 시절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언제 무대에 서게 될지, 아니면 영원히 무대에 서지 못하고 연습만 하다가, 청소만 하다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등등으로 무척 괴로운 시절일 것입니다.
왜 연예인들이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연습생 시절 힘들었던 얘기를 가끔 하지 않습니까? 라면만 먹었다는 둥, 돈이 없어 어떻게 했다는 둥.
이렇게 힘들 때 가족이라도 있으면 좀 견딜 만 할 텐데, 가족이 미국에 있는 재범 군은 고향의 ‘부랄 친구’들한테 쌍시옷 문자 쓰면서 넋두리를 하고 욕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중에 “한국 참 엿 같다”는 말도 나온 것이고.... 왜 욕 하면 통증이 덜어진다고 얼마 전에 연구 결과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가 엊그제, 즉 스타의 반열에 오른 상태에서 그런 한국 비하 발언을 했다면 비난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단물을 빨면서 침을 뱉는다는.
그러나 그가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유명인이 아닌, 즉 한국에서 말하는 이른바 공인도 아닌 연습생 시절이었습니다.
재범 군의 그런 욕설을 마이스페이스에서 발견한 사람은 ‘특종’으로 이를 인터넷에 올릴 만 했겠지요. 하지만 그 뒤에 불어 닥친 엄청난 비난의 폭풍은 저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외국에 살다 온 젊은이가 낯선 사회에 대해 비난을 할 수도 있는 건데,
또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의 젊은이가 사는 환경이나, 한국의 연예계 현실을 보면 그런 비난을 할 만한 사정도 충분히 있을 것 같은데...,
단지 “한국을 욕했다”는 한 가지 팩트 때문에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사람의 거의 전부가 욕설을 퍼붓고,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 버리는 현실에 대해서는 참 할말이 없습니다.
오늘 나온 글들을 보니 재범 군이 마이스페이스에서 한국에 대해 좋게 쓴 글도 있더군요. ‘인제 나도 한국 사람 다 됐다’고.
어떻게 보면 한국을 욕하던 청년이 한국에 잘 정착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끝나는 것도 참 한국적인 현상입니다.
참 한국 사람 무서운 것은 템포가 너무 빠르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생각을 할 짬을 주지 않습니다.
재범 군의 비하 파문이 나온 뒤에 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이런 저런 측면도 봐 가면서 토론을 하고 해명을 듣고 했으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젊은이들의 사연도 알게 되고,
그 젊은이들의 생각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쳐 주고,
또 미국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 젊은이가 사는 현실이 얼마나 팍팍한지에 대한 얘기도 듣고 했으면 한국의 사정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한국인의 조급증, 폭발적인 감정적 대응이 결국 이렇게 한 사람을 찢어 놓으면서도 얻은 교훈은 별로 없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를 지켜 본 해외 출신 연예인의 가슴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을 더욱 사랑해야 하겠다는 각오? 한국 네티즌의 애국심에 대한 경탄?
저는 오직 하나만 그들의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한국 참 무서운 나라구나”라는. 그래서 그들은 다짐할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들어도 한국에 대해서는 비판의 비읍자도 꺼내지 말아야지. 오로지 좋다는 말만, ‘코리아 넘버원’만 해야지”라고.
이런 공포 분위기,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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