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가 공주님 마음 잡으려면 엄청난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공주님 입술을 하인이 빼앗는다?
짝짓기 심리에 대한 기본 이해 없는 사랑 이야기는 황당 그 자체
별 의미 없는 드라마라는 건 이제 많은 분이 아실 것이고, 이 드라마가 왜 어설퍼 보이는지 한번 심심풀이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들 역시 요즘 추세대로 대단한 사람들 일색입니다.
국내 최고 그룹의 유일한 상속녀라는 강혜나(윤은혜 분)는 재벌 집 둘째 아들이지만 인권 변호사라는 험악한 길을 걷고 있다는 이태윤 변호사(정일우 분)를 사모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문제 없습니다. 강혜나가 재벌 상속녀인 데다 미모와 재주까지 받쳐 줘 그야말로 ‘세상에 딱 하나 있는 단독-유일 1등’의 여자지만,
이런 여자라도 재력이 비슷한 데다가 외모까지 받쳐 주며 또 재벌집 자식으로선 특이하게 인권 변호사란 험난한 길을 선택할 정도의 뱃심을 가진 남자라면 혹할만도 하죠.
잘난 재벌 집 자식들이 서로 좋아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문제는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서동찬 집사(윤상현 분)라는 존재.
외모와 재주가 좋아 제비 시절 작업 성공률 99%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빛 더미에 올라앉은 오갈 데 없는 서민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사람과 극명하게 대비되죠.
이 드라마가 뜬금없는 건 자본주의 세계에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강혜나-서동찬 두 사람을 너무나 쉽게, 아무 설명 없이 남녀로 접촉시킨다는 것입니다.
아가씨 방에 전깃불이 나갔다고 한밤중에 총각 집사가 홀홀단신 아가씨 방에 들어가 ‘덮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나,
또 이태윤 변호사라는 '지상 최고 킹카'에 꽂혀 정신이 나간 강혜나를, 집사 주제에 서동찬이 겁도 없이 기습키스를 한다는 설정도 참, 너무나 말이 안 됩니다.
강혜나 정도의 부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그냥 자라면서 “이쁘다”는 소리만 들어도 여자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남자를 거부하게 된답니다. 이쁜 여자에겐 자기보호 본능이 생긴다는 거죠.
이렇게 되는 이유는 남자가 그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태윤 같은 최고의 남자는 하룻밤 잠자리 상대라면 여자의 외모만 따지겠지만,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든요.
즉, 아무리 예쁘고 배경 좋은 여자라도 '헤프다'는 판정이 나는 순간, 그 여자는 2급으로 강등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정을 잘 알기에 이쁘고 배경 좋은 여자는 ‘성녀 이미지’까지 갖추려 노력하게 되며, 그 노력이 튕김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1급 여자는 튕기면 튕길수록 더 좋은 남자가 오게 돼 있고, 우리 선조들 중에도 그렇게 튕긴 여자들이 더 좋은 남편감을 얻어 행복하게 잘 살면서 자녀를 더욱 많아 낳아 잘 길렀을 것이고, 우리는 그런 여자의 후예라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설명입니다.
조건이 이럴진대, 그 존귀한 공주님의 입술을 하찮은 집사가 훔쳤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세계 최고의 여자'가 자신의 짝짓기 작전이 맞아들어가는 데 황홀해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짝 후보로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랫것이, 기습 키스로 그녀의 짝짓기 전략에 방해를 놓을 때 예상되는 사태는,
서동찬의 '인생 끝' 말고는 다른 결과를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상식이죠.
남자나 여자나 짝짓기가 방해를 받으면 화를 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남자는 성행위가 방해받을 때, 즉 여자가 성행위를 거부할 때 화가 난답니다. 반대로 여자는 상관없는 남자가 자신의 짝짓기 전략을 방해할 때, 예컨대 원치 않는 남자가 성추행을 한다거나 해 전략이 흐트러질 때 가장 화가 난답니다.
동찬의 기습키스가 바로 이런 사태, 즉 여자의 짝짓기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만행이 되고, 여자는 '오뉴월 서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 회에 보면 두 사람은 또 헤헤 거리면서 공주님과 집사 사이로 어딘가를 함께 갑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설정입니다.
물론 부잣집 딸과 빈털터리 총각이 사랑하지 말란 법 없죠. 그러나 그러려면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동찬은 비록 현재는 아랫것에 불과하지만, 이태윤 변호사보다 더 앞날이 창창하고, 더 돈을 많이 벌 것이며, 더 높은 지위에 오를 것이라는 비전을 보여 줘야 겨우 혜나의 검토 물망에 오를 수 있는 남자입니다.
그런데 서 집사는 기습 키스를 하기 전까지 잔재주 몇 개 보여 준 것 말고는 전도유망함에 대해 보여 준 게 거의 없는데, 대뜸 키스부터 해 버린다면 그런 남자는 영원한 예선 탈락입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뼈대가 ‘공주와 서민의 사랑’이라면, 공주가 하인에 불과한 집사를 왜 사랑하게 됐는지, 그 과정마다에서 ‘그럴듯함’이라는 외피를 씌워 줘야 할텐데,
그래야 그 드문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 텐데 이 드라마는 도대체 그런 계기나 얼개, 설정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유사한 드라마를 많이들 봤을 테니 그저 자기들은 앞으로 쭉쭉 나가면 "자세한 사정은 알아서들 생각하셔~" 같기도 하고, 참 대책없는 드라마는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랑 얘기를 하면서 남녀 짝짓기 심리의 기본도 모르면서 애기를 풀어나가다니.... 에이, 진화심리학 공부나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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