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진, 50년 뒤의 로봇 예상 논문을 발표
50년 뒤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예상한 논문이 ‘심리과학의 관점들(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최신호에 실렸습니다. 원문은 여기로.
미국 일리노이 대학 심리학과의 닐 로즈 교수와 컴퓨터 과학자 이얄 아미르는 이 논문에서 앞으로 50년간 로봇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겠지만 사람과 로봇이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습니다.
우선 현재의 기술력으로 미뤄 볼 때 앞으로 50년 동안 로봇은 크게 발전해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가질 것이라고 이들은 예상했습니다.
l 사람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l 사람이 말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l 관련 정보를 토대로 사람의 질문에 대답한다
l 사람 같은 동작으로 걷고 달린다
l 사람 같은 얼굴 표정을 짓는다
l 얼굴 표정을 읽어 사람의 감정을 짐작한다
이런 능력을 갖지만 50년 뒤에도 로봇은 여전히 ‘로봇처럼’ 보일 것으로 연구진은 예상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듯 속을 까보기 전에는 로봇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은 2060년이 돼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상대방 마음 넘겨 짚는 능력 심어주는 게 가장 힘들어
이들이 이런 예상을 하는 근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부분을 로봇의 머리에 심어 주는 게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랍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을 로봇에게 갖춰 주는 일입니다.
마음의 이론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넘겨짚는 사람의 능력입니다. 저 사람은 내 마음을 일부 알고 있고, 내가 저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또 알고 있고 등등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짐작 또는 ‘그 사람 입장이 돼 생각하기’ 능력이 ‘마음의 이론’의 내용입니다.
로봇에게 이런 능력을 심어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2060년이 돼도 로봇이 멍을 때리는, 즉 인간이 한 의사 표시를 눈으로 보면서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멍청한 상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묘한 몸짓 언어까지 로봇이 이해하기는 힘들 것
연구진은 또한 로봇과 사람이 ‘교감’을 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의문을 던졌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데는 많은 몸짓 언어가 동원되는데 로봇이 과연 이런 미묘한 몸짓 언어까지 알아먹을 수 있겠냐는 것이죠.
연구진은 로봇에게 어려운 과제로
l 눈을 깜빡이는 타이밍
l 눈길을 언제 맞추고 언제 피해야 하는지
l 상대방의 몸짓에 대한 이쪽의 몸짓 대응
l 거리를 어느 정도 둬야 상대방 사람이 편하게 또는 친밀하게 느낄지
등을 알아내는 능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람은 로봇 상대에게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런 미묘한 몸짓은 인간관계에서 너무 중요합니다. 가끔 TV에 나오지만 뇌의 문제 등으로 표정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할 때는 눈도 반달 모양이 돼야 사람들끼리 재밌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표정을 맘대로 바꾸지 못하는 환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힘들고 외톨이가 되기 싶다는 것입니다.
실제 마음은 안 그렇겠지만 표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멀리 대하게 되는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죠. 사실 남녀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순간은 정말 ‘눈짓 한 번’으로 결정이 되기도 하죠. 또 결정적인 순간에 눈을 치켜뜨냐 내리까냐라는 정말 불과 몇 mm의 동작 차이로 사랑이 불타기도 하고 꺼지기도 하죠. 이런 미묘한 인간의 세계를 로봇이 과연 모방할 수 있겠냐는 게 연구진의 걱정입니다.
“사랑해 달라”는 로봇을 미워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은 사람끼리만 이렇게 까다롭게 굴 뿐, 로봇과의 관계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람의 끝모를 적응력 때문이죠.
예컨대 사람은 정말로 쉽게 사랑에 빠집니다. 성인용품점에서 파는 ‘인형 여자’ 있잖습니까. 독신남들이 섹스 상대로 애용한다는…. 그 인형을 밝은 대낮에 보면 “이런 택도 없는 인형과 어떻게 그 짓을 하나” 싶지만 잘 팔린다니 어쩌겠습니까?
또 과거에는 ‘플레이보이’ 같은 잡지, 지금은 인터넷 포르노지만, 사람들은 종이에 인쇄된 선과 색,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점과 선, 색에 아주 쉽게 흥분합니다. 심지어 W x Y 세 글자만 써 놔도 남자는 흥분할 수 있습니다. 점과 선에서 실제 여자를 연상해내는 인간의 놀라운 상상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로운 남자가 말대꾸를 해 주고, 어느 정도 생각도 있고, 촉감도 여자 비슷한 로봇에 나타난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요?
사람이 얼마나 잘 속는지는 컴퓨터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잘 나타난답니다. ‘말대답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을 속여라’는 대회가 영국인가에 있다는데, 컴퓨터가 하는 말에 사람은 보통 아주 잘 속는다는 겁니다.
예컨대 사람이 “비가 오는군”이라고 말하면 컴퓨터가 이를 받아 “비가 온다굽쇼. 그런데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라는 식으로, 사람이 한 말을 동어반복하고 그 뒤에 살짝 다른 내용을 붙이도록 프로그램해 놓으면 많은 사람이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호르몬의 난잡 성교’ 하는 동물인데…
또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랑하게 돼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 있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사랑의 호르몬’이라고도 하죠. 옥시토신을 연구한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의 폴 잭 교수는 “사람은 도대체 사랑을 느끼는 대상에 가리는 게 없다”고 말했답니다.
잭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은 낯선 사람이 작은 신뢰감만 보이면 바로 옥시토신 수치가 올라간답니다. 금세 믿고 호감을 보이는 것이죠. 인터넷 글월만 주고받아도 사랑에 빠지고 심지어 자기 차와도 사랑에 빠져 영국인가 어딘가는 차와 차주인의 결혼증서를 발급해 주는 웹사이트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아무 대상에나 잘 빠져드는 사람의 특징을 잭 교수는 ‘호르몬의 난잡한 성교(hormonal promiscuity)’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모나 행동이 사람과 비슷한 로봇이 나온다면 사람은 반드시 그 로봇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50년 뒤 로봇이 조금 꺼벙할 거라는 과학자들의 예상이 맞을지 안 맞을지도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앞으로 초보적인 ‘사랑의 로봇’이 나왔을 때의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반응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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