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관심 속에 진행된 16일 ‘3자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 그야말로 ‘태산이 울리더니 쥐 한 마리’라고 소리만 요란했을 뿐이다.
물론 아무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전 의제 조율을 전혀 하지 않은 채 한 시간 남짓 만나는 회동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다. 청와대 쪽에서 민주당 측과 사전 조율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합의안을 이끌어낼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추석 전 국정 전환’은 실패로 끝났고, 이번 추석 귀향 때 밥상머리 화제는 ‘채동욱과 국정원 대선개입’이 될 전망이다. 추석 전 국정 전환에 실패한 것이 청와대에 유리할지, 야당에 유리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국면 전환을 서둔 게 청와대 쪽이었다면, ‘합의문 없는’ 3자회담에 참여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비난할 일도 아닌 것 같다.
3자 회담은 결국 서로 할 말을 하고 헤어진 모임이었다. 할 말을 한 그 자체로서도 의미는 크다. 구중궁궐 청와대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생각의 흐름을 야권이 비로소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국면전환에 실패한 가을정국은, 여권의 지속적인 ‘공안 무드 조성’과, 이에 저항하는 촛불세력의 집회, 게다가 정기국회의 공전 등으로 시끄럽게 돌아갈 전망이다. 국정이 잘못되면 결국 그 부담은 청와대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박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가 서로 하고픈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특히 귀를 확 잡아끄는 말이 있다. 바로 김 대표가 국정원 개혁을 강도 높게 주장하자 박 대통령이 했다는 말, 즉 “노무현 대통령 때, 김대중 대통령 때는 왜 국정원 개혁하지 않았냐. 민주당이 집권할 시절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민주당 역시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없애지 못했고 그리고 국정원 수사권을 계속 존치시키지 않았느냐”는 지적이었다.
'내'가 누리기 위한 집권보다, '시스템 바꾸기' 위한 집권이었다면…
중정-안기부-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정보정치에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희생됐고,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최소한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만큼은 개혁할 수 있었지 않느냐는 뼈아픈 지적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정원은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이는 미국 CIA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대통령만 마음먹는다면 국정원 개혁을 할 수 있다.
물론 고 노무현 대통령은 나름대로 국정원 개혁을 했다. 민주인사를 국정원장에 앉히고, 국정원장과의 독대를 하지 않는 등의 조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안은 ‘인적 조치’이지 ‘시스템 개혁’은 아니었다. 민주적인 국정원장이 취임하고, 대통령이 국정원장을 독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노력으로서는 상찬할 만하지만, 시스템은 그냥 놔뒀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만하다.
이러한 실수는 과거 열린우리당의 잘못된 생각, 그리고 지금도 야권인사들에게서 읽혀지는 잘못된 인식, “즉, 이번에는 우리가 잡았으니 우리가 누릴 차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개혁에는 관심 없고 밥그릇 싸움에만 관심 갖는 자세다.
민주세력, 상식세력의 집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박 대통령의 “그때 왜 안 했느냐?”는 발언을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내’가 누리기 위해 하는 정치투쟁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정치투쟁이 돼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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