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는 ‘날 제대로 대우하라’는 흥정 수단

상체근육 발달한 남자일수록
예쁜 여자일수록 대우받기 원하기 때문 더 잘 화내


팔 근육이 발달한 남자와 예쁜 여자는 화를 잘 낸다는 연구가 나왔네요. 진화심리학의 원산지 중 하나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산타 바바라 캠퍼스의 리디 코스미데스, 존 투비 교수, 그리고 이 대학 진화심리학 센터의 박사 후 연구원 애런 셀이 함께 연구한 ‘화’에 대한 논문이 학술지 PNAS(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8월3일자에 실렸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화를 내기 시작하는 게 언제부터인지 아십니까? 생후 6개월부터랍니다. 이때가 되면 목소리와 팔다리 움직임으로 분노를 나타내기 시작한다는 군요.

연구진이 분노가 나타나는 상황을 분석해 보니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할 때’랍니다. 즉 나는 이 정도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그만큼 대우해 주지 않을 경우 화를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는 기본적으로 “날 제대로 대우하라”는 협박이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화를 잘 내게 된답니다. 결국 ‘화’란 대우를 받기 위한 협상 전략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고 그 탓에 화를 잘 내는지를 관찰했더니 결론은 남자의 경우 상체 근육이 발달한 사람이, 그리고 여자 중에서는 매력적인 여자가 더 화를 잘 내더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가 높을 만한 사람들이 그럴 만도 하네요.

그런데 연구진은 여기다 한 가지를 더 붙입니다. 상체 근육이 발달한 남자는 자존심이 높아 화를 잘 내지만 그런 화는 소규모 사람이 모여 살 원시시대에는 맞는 전략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죠.

기껏해야 수십 명 정도의 사람이 무리를 지어 살던 시절에는 남자들이 각자의 상체 근육량을 모두 알고 있고 그래서 ‘최근 근육’이 성질을 내면 그에 걸맞은 성과를 볼 수 있었겠지만 요즘은 어디 그러냐는 것이죠. 상체 근육이 좋다고 뻑 하면 성질을 내면 경찰서 출입 자주 하기 딱 좋은 게 요즘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여자의 경우는 다르답니다. 근육형 남자는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협박함으로써 화를 내는 것의 효과를 거두지만, 매력적인 여자는 “줄 수 있는 혜택을 안 줄 수도 있다”는 것으로 협박하면서 효과를 거둔답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여자는 동원 가능한 수단도 많이 화를 내면 대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다고 하는군요.

근육으로 협박을 가하는 남자의 화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지만, 줄 걸 안 줄 수 있다고 협박하는 매력적 여자의 협박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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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와 호날두 중에 누가 좋냐고? 

난 단연코 호날두!! 

왜냐고? 인간적이잖아!! 

동양인 비하하느라고 눈찢는 메시가 좋으니? 

호날두는 저런 천박한 짓 말라고 메시 같은 것들한테 아래위로 찢어주잖아.   


"아래위로 눈 찢어진 야만인들아!"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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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적으로 볼 때 행복의 절대기준은 장수-번식
여자가 더 오래 살고 번식 성공률도 높은데 왜 여자가 약한 성?


진화심리학계의 독설가 가나자와 사토시 교수(영국 런던경제대학)가 또 사고를 쳤네요. 페미니즘에 대해 ‘비논리적이며, 불필요하고, 악하다(Why modern feminism is illogical, unnecessary and evil)’고 자신의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 블로그에 지난 2일 글을 올린 것입니다.

이런 과격한 글에 여성 동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바로 다음 날 코네티컷 대학의 레지나 바레카 교수는 같은 웹사이트에다 ‘안티-페미니즘이 비논리적이며, 불필요하고, 악하며 게다가 끔찍하게 추접스러운 이유(Why anti-feminism is illogical, unnecessary, evil and incredibly unsexy)’라는 글을 올려 반박한 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여러 블로그에는 가나자와 교수를 반박하는 여성의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가나자와 교수가 여성운동에 맹공격을 하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입니다.

그에 따르면 여성운동은 ∇비논리적: 남자와 여자가 같거나 또는 같아져야 한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 ∇불필요: 원래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강한 성이기 때문 ∇사악하다: 여성운동이 여성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가 여성운동을 맹비난한 것은 ‘유럽적인’ 현상이랄 수 있겠죠. 그렇기에 아직도 여자들이 낮은 위치에서 신음하고 있는 한국 사정에서 그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 그의 주장 중에서 두 번째 것, 즉 여자와 남자 중 여자가 더 강한 성이기 때문에 여성운동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한번 잘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나자와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여자가 왜 남자보다 우세한지를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행복의 기준은 ∇장수와 ∇번식성공인데, 이 두 가지에서 유사 이래 남자가 여자를 이겨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장수-번식이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은 진화심리학자로서 당연히 제시할 만한 기준이죠.

우선 장수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은 상식이니까요.

두 번째 번식(자식 낳기) 측면에서도 여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침을 흘리는 남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여자는 원할 경우 비교적 쉽게 자식을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능력이 안 될 경우 자식을 보지 못하고 ‘유전적인 패배자’가 돼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번식에 관한한 아기 낳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여자고, 정자은행은 물론 심지어 최근 정자 없이도 난자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과학자들이 개발하고 있다니 정자(수컷)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고 할 수 있죠.

여자는 아버지가 누군지는 헷갈려도 자기 자식이 확실한 아기를 낳습니다. 생물이 지구상에 태어난 이유는 후손을 보기 위해서인데 여자는 이런 측면에서 원하면 얼마든지 아기를 낳을 수 있어 번식 성공에서 남자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본 욕구를 충족한 여자는 오래 살기까지 하면서 인생을 천천히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여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녀가 있고 가족이 있으면 이들을 통해 파워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반면 남자는 흔히 '생쥐 경주(rat race)'라고 표현되는 남자끼리의 피 튀기는 권력 경쟁을 벌여야 하고 또 여자를 둘러싼 쟁패에서도 피가 튀깁니다. 심장마비가 남자들에게 여자보다 10년 먼저 나타나는 것도 다 이렇게 피곤한 남자의 인생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가나자와 교수는 "진화적으로 보면 여자가 이렇게 강자인데 왜 '여자와 남자가 똑 같아져야 한다'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냐"는 것이지요.

‘약한 성(weaker sex)’이란 말은 과거 여성을 지칭하던 말이었죠. 그런데 이제 약한 성이 남성이 돼 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실패한 성(Failed Sex)’라는 제목으로 남성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의 요점은 과거 육체의 힘이 중요하던 시대에는 남자의 근육이 남성을 절대적 우위에 놓았지만, 이제 손가락 끝으로 모든 걸 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근육이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남녀 차이는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남자들은 선천적으로 ‘충동성’이란 걸 갖고 있어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공부 하는 데도 방해를 받지만 여자들은 이런 충동성이 적기 때문에 착실하게 공부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더 공부 잘하는 시대는 확실히 열렸습니다. 한국의 각 학교에서 수석 입학자 또는 졸업자가 여학생으로 도배되는 현상은 이제 다반사죠. 미국 고교 졸업식에서는 최고 우등생이 고별사를 하는데, 어느 고교 졸업식을 가보나 고별사의 주인공은 거의 항상 여학생입니다. 한인 여학생도 더러 주인공이 돼 가슴 뿌듯하게 만들어 주죠.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이화여대)는 자신의 저서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에서 앞으로 한국에서의 여성 위치에 대해 ‘일단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 시대가 생각보다 아주 빨리 올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여자가 더 강한 성이기 때문에 여성운동은 불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마초 같은 주장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쌍한 남자 신세'를 토로하는 것 같기도 해 영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따박따박 읽어내는 북손탐의 재밌는 동영상들>



고흐가 미쳤다고? 이렇게 맨정신인데? 

고흐는 열정만의 화가라고?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은 지식인인데? 

우리가 잘못 배운 빈센트의 진면모!




메시와 호날두 중에 누가 좋냐고? 

난 단연코 호날두!! 

왜냐고? 인간적이잖아!! 

동양인 비하하느라고 눈찢는 메시가 좋으니? 

호날두는 저런 천박한 짓 말라고 메시 같은 것들한테 아래위로 찢어주잖아.   


"아래위로 눈 찢어진 야만인들아!"라면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법이 있다고라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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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한국 정치권에서는 돈을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이른바 민주 정권에서도 대통령과 일족을 둘러싼 금품 수수 비리가 쉬지 않고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청렴 기치로 내건 정권에서 대통령의 아들 등을 둘러싼 비리가 영락없이 터져 나와 , 한국 사람은 정말 어쩔 없나 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던 것이죠.

 

그런데 미국에서 연구해 보니 내가 유혹에 넘어갈 같냐?”라고 자신 있어 하는 사람일수록 실제 상황이 되면 오히려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는군요.

 

"난 유혹에 안 넘어가" 자신하는 사람일수록 더 위험

미국의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 경영학과의 로란 노드그렌 교수 팀은 실험 대상자들을 모아놓고 음식, 담배 같은 유혹에 사람들이 얼마나 견딜 있는지 실험해 봤다고 합니다.

 

물론 실험 전에 이들의 성향을 조사했죠. 개인이 나는 유혹에 견딜 있다 생각하는 정도를 측정한 것입니다.

 

실험에서 배고픈 상황에서 달고 기름진 음식을 얼마나 먹는지 봤더니, 앞선 조사에서 음식의 유혹 정도는 얼마든지 이겨낼 있다 자신있게 말한 사람일수록 달고 기름진 음식에 쉽게 손을 대면서 음식에 탐닉하더라는 것입니다.

 

반면 유혹에 약해라고 자신없어 사람일수록 음식을 조금 시키거나 맛난 음식을 일부러 피해 과식하는 정도가 덜했답니다.



자신있어 하다가 살찌고 마약중독에 빠져
 

유혹에 빠져라고 자신있어 하는 사람일수록 쉽게 유혹에 빠져드는 이유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 겁없이 스스로를 집어 넣기 때문이랍니다.

 

담배를 참는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답니다. “담배 정도를 참냐?” 큰소리 사람일수록 영화 속 담배 피우는 장면만 보여 줘도 벌써 담배에 손이 가더라는 거죠.

 

이런 실험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사람들은 유혹을 이겨내는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자신을 통제 못하면서도 있다고 생각하는 오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만, 약물중독에 빠지게 된다 지적했습니다.

 

유혹 당하는 상황 자체를 피해야

그리고 유혹에 빠지지 않는 최선의 길로 연구진은 자신감을 줄이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황 자체를 피하는 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노드그렌 교수는 또한 재계나 정계의 리더일수록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감독 또는 규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제안했습니다.

 

월가 금융인들의 끝모를 탐욕 때문에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경제난에 몰아 넣은 미국이니 만큼 경영학과 교수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도 당연하죠.

 

월가 금융인들이 횡포를 부리는 미국에도 이런 감시 시스템이 필요하겠지만 이긴 자가 먹는(winner takes all)’ 시스템이 극도로 발달한 한국에는 이런 규제-감시 시스템이 더욱 필요할 같습니다.

 


사법당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한국

감사원이니
검찰이니 하는 조직들이 이런 일을 하라고 있지만 이런 조직의 일부 구성원들이 공익보다 사익을 먼저 추구하면서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한국 법무부의 이름은 법에 대한 일을 하는 이지만, 미국 법무부 이름은 정의부(Department of Justice)입니다.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서슬퍼런 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법당국의 눈에 띄지 않는 문제 없이 있지만 넘지 말아야 넘어 조사 대상이 되는 순간, ‘인생 끝났다 생각해야 한다고 한인 교포들은 말합니다.

 

반대로 한국 사법 시스템은 살아 있는 권력 선을 마구 넘는 잘못에 관대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죠. 계속 논의 단계에만 머물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같은 조사 기관이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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