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먹으면 번식 뒤로 미루기 때문 더 오래 살아

많이 먹으면 번식 서두르지만 면역성 약해져

 

요즘 아이들은 무척 성숙하죠? 여자 아이들은 초경 나이가 빨라졌다고 하고 초등학생 남자 아이들도 여자친구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런 조숙 경향과 함께 암, 당뇨병 같은 성인병은 어른뿐 아니라 어린애들에게도 나타나면서 성인병 발생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하죠.

이런 두 가지 현상, 즉 어린이들은 조숙해지고 성인병은 늘어나는 현상은 한 원인의 두 가지 양상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생물학과 대학원생 윌 랫클립(Will Ratcliff)이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6월25일자에 발표한 논문은 현대인의 풍족한 식생활이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으며, 사람은 적당히 굶어야 장수할 수 있도록 진화적으로 맞춰져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궁핍한 시기 찾아오면 인간 몸은 생존 모드에 돌입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의 몸은 '풍족한 시기'와 '어려운 시기'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풍족한 시기가 찾아오면 빨리 번식하기 위해 성적으로 서둘러 조숙해지고,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번식을 늦추기 위해 성적 성숙을 늦춘다는 것이 이 가설의 핵심입니다.

요즘처럼 풍족한 시기, 어려서부터 뭐든 맘껏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몸은 '서둘러 번식하는' 모드로 들어간답니다. 풍족한 환경에서 너나 없이 자식을 낳을 테니까 하루라도 먼저 자식을 낳는 게 유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랍니다.

반면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번식을 늦추는 게 유리해진답니다. '기근'이 세상을 휩쓸면서 많은 개체가 죽어 나간 다음에 새끼를 낳아야 적은 개체 안에서 자신의 후손이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즉 소식을 하면 몸은 생존 모드에 들어가면서 면역력을 높이고 ‘훗날’을 기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식을 하면 활성산화가 줄어 장수한다는 이론이 오래 전부터 나와 있었지만, 이 가설은 그런 원인보다는 궁핍한 시기가 되면 몸이 진화적으로 적응하면서 더 오래 살게 된다고 설명하는 것이지요.


번식 마친 개체는 폐기처분 하는 게 유전자에게 유리

실제로 한국이나 미국처럼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에서는 초경 나이가 일러지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기근이 나타나는 아프리카에서는 초경 나이가 훨씬 늦답니다.

성적으로 조숙해지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빨리 조숙해져 빨리 번식 임무를 마치면 어른 세대는 물러가 주는 게 유전자 입장에서는 유리하다는 것이죠.

유전자 입장에서는 이미 번식을 마친 늙은 몸을 유지하는 비용보다는 새로운 몸에 투자하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늙은 몸은 빨리 성인병 등에 걸려 죽게 된다는 해석입니다.

풍족한 시기에는 성적으로 활발해지는 대신 빨리 죽는 현상은 남자의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대표적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서도 드러납니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풍족기에는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하게 분비돼 그 영향으로 수컷은 번식 행동에 미친 듯 몰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테스토스테론의 특징 중 하나는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번식에 몰두하게 만드는 한편 개체의 면역력은 약해져 빨리 죽게 된다는 현상이지요.


기근 식품에서 발견되는 약한 독성의 효과

이런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면서 랫클립은 기근 때 먹는 음식에도 주목합니다. 기근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 음식에는 대개 약한 독성이 있고, 이런 독성이 번식을 뒤로 늦춰 줘 오래 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에서는 호메시스(hormesis) 이론이라는 것도 있죠. 기준치에 못 미치는 약한 독성은 오히려 몸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호메시스 효과도 ‘약한 독성이 번식을 뒤로 미루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상대적으로 빈곤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삼겹살에 소주는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게 한국 경제입니다. 이렇게 먹는 게 풍족하다 보니 한국인의 성적 조숙과 성인병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과하게 먹는 게 잘 사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궁핍하게 살아야 좋다는 교훈을 이 새로운 가설에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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