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순신 위로 날아간 스노보드
미국에서도 링컨 위로 스노보드 날 일 있을까


광화문에서 국제 스노보드 대회가 열린 지난 주말, 공교롭게도 평소 거의 안 가는 서울 시내를 토-일요일 내리 이틀 동안 나가게 됐다. 막히는 차, 구경을 하겠다고 몰려가는 인파들….

 

이런 모습을 좋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상식을 깨라는 것이었다. 광화문에서 뭘 하면 어떻냐는, 이런 기회에 격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광화문 광장은 우리의 중앙 행정부처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조선 왕조의 궁궐들이 있는 자리다. 미국으로 치자면 수도 워싱턴 DC 한복판의 '더 몰(the Mall)'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연방 국회의사당 앞을 동쪽 끝으로 하고 서쪽 끝의 링컨 기념관에 이르기까지 2.5km 남짓한더 몰은 연중 관광객으로 붐비고, 데모 행렬도 연중 활동하는 공간이다.

 

다른 나라는 안 깨는 격을 왜 우리만 깨나

 

이곳은 미국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성조기로 장식한 광대 모자를 쓰고 찾기도 하고,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조깅-산책도 많이 하는 곳이다. 그러나 워싱턴 DC 3년 남짓 살면서 더 몰에서 서커스단 공연 같은 유희성 행사가 열린다는 얘기는 정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미국에도 유명한 서커스단이 있고, 연예-오락 산업이 세계 최고로 발달한 나라지만, 더 몰에서 이런 유희성 행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구와 건물이 밀집한 워싱턴에서 서커스 공연 같은 큰 공연을 할 때 더 몰처럼 넓고 좋은 장소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더 몰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일은 없다. 이런 오락 공연을 하기에는 너무 경건한 곳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찾는 링컨기념관이나 제퍼슨기념관 위나 옆으로 눈 활강대를 설치하고 스노보더들이 링컨이나 제퍼슨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광경을. 도대체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4대 중 한대는 총을 갖고 다닌다는 미국에서, 그리고 경찰도 총을 휴대하는 미국에서, 누군가 이런 실없는 짓을 누군가 한다면 총이 발사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조중동 중의 한 기자는 신문 칼럼에 썼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 광화문에서 해서 안 될 일이 도대체 뭐냐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리고 그는 묘기를 부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외국인들이 웃음 짓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는 내용을 썼다.

 

그렇다. 외국인들은 광화문 위로 날아오르는 스노보더들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물어보자. 외국인이 즐거우면 우리도 즐거워야 한다는 공식은 도대체 언제부터 나온 것인가?

 

한국에서 가장 보기 싫은 장면 중 하나는 백인들이 캔맥주-병맥주를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마시는 장면이다. 그들은 즐겁다. ? 자기 나라에서는 철창행을 각오하기 전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을 한국 거리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나치게 백인 프렌들리한 이 나라 사람들은 백주 대낮에 술을 홀짝거려도 그저 백인이라면 미소부터 날려 준다.

 

국격 걱정하던 그 많던 할아버지들, 다 어디 가셨나

 

그들에겐 너무 재미있겠지만 보는 필자에겐 상당히 치욕적이다. 자기들 나라에서는 도로는커녕, 공원에서도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그들이 광화문에서 맥주캔을 들고 다니면서 과연 이 나라를 그렇게 이 있는 나라로 생각할지, 아니면 도대체 격이 없는 나라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도대체 이 나라는 우스운 것이, 광화문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국격이 떨어진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던 할아버님들이, 왜 세종대왕-이순신 위로 스노보드가 날아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이들이 생각하는 국격은 고정적인 기준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싫은 좌파가 하면 뭔 일을 하든 나라 망신시키는 것이고, 돈과 힘을 가진 국가-정부가 하면, 어떤 일을 하던 다 고상하고 숭고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보수의 기준은 양심지키기라는데, 도대체 이 나라의 보수는 그런 기준이 있는지, 없는지. 그저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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