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어미 “물질 해야 남편 건사하고 먹여 살리지”
남자가 근육의 힘으로 경제권 쥔 것은 1만년 전에 불과
현대 사회는 더 이상 근육 필요없는 사회가 됐는데…
재미있게 보고 있는 ‘탐나는 도다’ 5회를 보면 재미있는 대사가 나옵니다.
옆 마을과의 물질 겨루기에 나갔던 버진이 죽을 고비를 넘긴 것에 대해 “고양이를 산에 보낸다고 호랑이 되겠냐?”고 귀양다리가 따지자 버진 어미가 “물질을 해야 서방 건사도 하고 먹여 살릴 것 아니냐”고 대꾸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먹여 살릴’이죠. 즉 경제를 여자가 책임진다는 얘기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버진 어미는 대상군으로서 항상 바쁘게 경제 생활을 하지만 버진 아비는 오락가락 할 뿐 도대체 생업이 뭔지가 불분명하죠. 가끔 새끼도 꼬고 어망도 손질하는 걸로 봐서는 어부 일도 하긴 하는 것 같지만.
제주도의 경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조선시대 제주도라면 남녀가 밭일은 공통으로 하면서 남자들은 어부, 여자들은 해녀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해녀 할머니의 증언이라는데 "남자는 고기 낚으러 댕기구, 거의 어부 하구, 해녀 조금 하고, 농사 많이 지었지"라는 걸 보면 제주도 보통사람들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농사 짓기 힘든 제주도의 독특한 자연환경 때문에
제주도는 한국 땅에서 특이한 지역이죠. 한반도 전역이 농사를 지었지만 제주도는 화산섬의 특징상 물이 땅 속으로 꺼지기 때문에 농사가 힘들고 그러나 보니 여자들은 ‘바다라는 숲’에 들어가 채집 생활을 하고 남자들은 배를 타거나 산에서 목축을 한 걸로 보입니다.
현대 남성들은 여자를 경제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는 데 익숙해져 있죠. 여자의 수입은 남자에 못 미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탐나는 도다’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남자가 경제권을 쥔 것은 1만년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화여대의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저서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에서 “경제적 남성의 우위는 1만 년 전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부터 비로소 근육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져서야 이뤄졌다. 그 전에는 거의 여자들이 식단을 책임지고 남자들은 가물에 콩 나듯 사냥 수확물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썼습니다.
1만년 전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남자의 경제력이 우위에 섰을 뿐 그 전에는 경제권을 여자가 쥐고 있었다는 소리죠.
이 얘기가 뭔고 하니 현대에도 수렵-채집, 즉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숲에 가서 먹을 것을 채집해 오는 원시적 생활을 하는 부족들을 연구해 보면, 먹는 양의 80% 이상을 여자들이 책임지고 남자들이 사냥으로 잡아오는 먹을 거리는 별미 정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사냥이란 게 항상 잡힌다는 보장이 없는 반면 채집이란 열심히 일하는 시간만큼 긁어 모을 수 있기 때문에 확률성에서 여자들의 채집이 남자들의 사냥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죠.
즉 엄마가 채집을 해야 가족의 끼니가 끊기지 않지 아빠의 사냥에만 매달리면 굶어 죽기 딱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시적 수렵-채집 사회의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버진 엄마 같은 소리를 한답니다. “빈둥거리면서도 큰소리 치는 남편의 폭력이 무서워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거죠.
자연 조건 때문에 농업 사회로의 완전한 전환이 쉽지 않았을 제주도에도 이런 수렵채집 시대의 전통이 내려오길래 “남편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해녀들의 얘기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남자가 경제력에서 힘을 쓰기 시작한 것은 1만년 전 농업을 시작할 때 부터라….
보통 농경 사회의 시작을 계급, 빈부격차, 정치권력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으로 잡는 거 같습니다.
그 이전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먹고 남는 잉여물이 없고 또 멀리 따로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빈부 격차라는 게 있을 수 없었죠.
1만년의 '근육 시대' 끝나고 여성시대는 왔건만 아직도 여자들은...
그런데 농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더 이상 사냥-채집을 위해 이동할 필요가 없게 됐고, 그래서 한 군데 모여 살기 시작했고, 또 어떤 사람은 잉여 농산물을 모으면서 부자가 되고 정치권력까지 차지하는 인간의 파노라마가 시작됐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던 1만년은 이제 끝났습니다. ‘근육의 힘’이 경제력의 근거가 되는 것은 운동선수를 비롯한 극히 일부의 직종에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손가락 끝의 정교한 조절’이 중요한 정보통신 사회이며 이런 사회에선 여자가 더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처럼 충동적이지 않고 언어 능력도 더 좋아 현대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바야흐로 근육의 힘이 지배한 1만년 역사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경제적 남녀평등 시대에 '버진 어미' 많이 나올까, 아니면...
경제적 남녀평등 시대가 오면 버진 어미 같은 사람도 많이 나올 것 같군요. 남자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가족 부양 의무’라는 짐을 일부 나눠 지는 여성입니다. 그러면 평생 일만 하다 40-50대에 일찍 죽어 버리는 한국 아버지도 줄어들겠죠.
앞으로 여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버진 어미처럼 경제적 짐을 나눠지는 여성이 늘어날지, 아니면 “난 돈 많은 남자가 좋더라~”며 모든 부담을 남자에게 지우는 여자의 전통적 짝짓기 전략이 계속돼 돈-권력 없는 남자를 계속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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