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부당하게 방해 받았는데 화도 안 나나?
한국 드라마 여주인공 성격 설정 좀 제대로 하자
사람들이 드라마를 최면 걸리듯 보는 이유는 ‘사람 사이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하는 얘기의 대부분이 ‘남 이야기’라는 연구 결과에서도 사람이 얼마나 사람 사이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보여 준다.
흔히 가십으로 표현되는 ‘남 얘기’가 사람들에게는 너무 재미있는 것이고, 이런 재미를 TV라는 매체를 통해 집 안으로 보내 주는 게 바로 드라마다.
진풍-수진의 뛰어난 연기가 드라마 재미 높여
현재 시청률 2위라는 KBS의 ‘솔약국집 아들들’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특히 진풍 역의 손현주와 수진 역의 박선영)로 재미를 주는 드라마다. 그러나 지난 번 포스팅에서도 지적했듯 등장 인물의 지나친 ‘부르주아화’는 좀 우스운 대목이기도 하다.
복실(제니퍼 김, 유선 분)을 그냥 “의대 나왔다”라고 해도 될 텐데 꼭 세계 최고 의대 중 하나인 “존스 홉킨스를 나왔다”고 뻐겨대는 거나, 또 대풍이 그냥 좋은 의대 나왔다고 해도 될 텐데 “서울 의대 수석 졸업”이라고 겁을 주는 게 좀 작위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포스팅: ‘솔약국집’ 등장인물 직업, 모두 짱짱한 이유있다
지난 회에서 진풍이 프러포즈하고 수진이 거절하는 커피샵 신에서 배우 손현주와 박선영은 멋진 연기를 보여 줘 극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떠듬거리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진풍의 촌스럽지만 진솔한 사랑, 그리고 본마음은 아니지만 눈물을 머금은 표정으로 대차게 거절하는 수진 모두 명연기를 펼쳤다.
똑똑한 여자 변호사가 왜 여자 망신 시키려 하나?
그러나 이들이 이런 명연기를 펼치게 된 상황, 즉 장래의 시어머니가 반대해 수진이 마음에도 없는 거절을 하게 된다는 사정은 역시 또 한번 지나치게 작위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수진은 변호사, 즉 똑똑한 여자인데, 장래 시어머니의 말도 안 되는 요구(“진풍은 빨리 결혼해야 하는데 너는 오빠의 자식을 돌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에 굴복해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면서 남자의 진솔한 사랑을 매몰차게 거절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젊고,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자(수진)라서 나이 많고 어눌하고 잘 생기지도 않은 남자(진풍)의 사랑을 받아들일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장래 시어머니가 말도 안 되는 강요를 하자, “그래, 내가 미쳤지”라고 정신이 퍼뜩 들고 청혼을 거절하는 것이라면 시청자가 아쉽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현실감은 있겠다.
그런데 좋아하면서도, 어차피 맺어질 것이면서도 잠시 극적인 재미를 위해 여자를 이렇게 희생시키고, 멍청한 여자로 만든다면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짝짓기 전략 방해 받아도 화도 안 나는 여자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두 사람이 다 짝짓기 과정에서 방해를 당한 것인데 짝짓기 전략에 방해를 받으면 남자나 여자나 다 화를 내게 마련이다. 진풍은 그래서 화를 낸다. 엄마가 놀라도록. 한번도 엄마에게 대든 적이 없던 큰아들이.
반면 수진은 이게 뭐냐? 왜 짝짓기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정 당했는데도 화도 못 내고 숨어서 울기나 하고, 화가 났다는 낌새도 주변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여자라서? 이건 말이 안 된다. 이렇게 줏대 없는 역할을 맡기려면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커피 심부름하는 아가씨로 역할을 배정하던지….
드라마틱 하면서도 현실감 있는 여배우 설정 왜 안되나?
사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의 성격 설정이 엉망으로 되는 게 거의 항상이었지만 이제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섹스 앤 더 시티’가 그렇게 인기 있었고 속편을 만든다니까 지금 배역을 누가 맡냐고 미국 사람들이 떠들썩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자 주인공들의 성격 설정을 제대로 했고, 그리고 드라마니까 드라마틱하면서도 또한 “맞아 저런 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끔 현실감을 살렸기 때문 아닌가?
우리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대개 여주인공에 비하면 있을 법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들은 그렇지 못하고 “에이, 저게 아니잖아” 또는 “저런 여자가 어딨냐?”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여주인공은 환상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리얼틱하면 안 되나?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속 이야기 같은 드라마라지만 이제 좀 땅에 발을 좀 디디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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